오피니언

한겨울에 피는 꽃

한겨울에 피는 꽃

by 운영자 2014.01.06

<김민정박사>
-문학박사
-시조시인


눈부시게 / 맑은 영혼 / 그 산에 살고 있나 // 그리움의 / 북소리 / 밤새 둥둥 울렸구나 // 이 아침 / 우아한 자태 / 날개 펴는 백로떼 // 단단히 / 물고 떠날 / 생각 하나 얻었는가 // 불현듯 / 그리워질 / 불씨 하나 묻었는가 // 이제 막 / 흰 날개 펴고 / 비상하는 겨울숲

- 졸시 「백로떼 날아오르는」, 전문 -

십여 년 전, 교육부 일을 돕느라 차출되어 콘도에서 묵고 있을 때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며 창 밖의 숲을 보았을 때 그 숲은 어제의 창백한 겨울 숲이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백로떼가 산을 에워쌌다가 이제 막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는 듯 우아한 자태로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겨울 숲에 눈이 와서 쌓이고 햇볕이 닿아 녹아서 흐르기 전, 순결한 눈의 형체를 간직한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진 설경이란 한 폭의 고즈넉한 그림이다.

금방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듯한 겨울 숲의 순백한 아름다움…. 밤새 소리없이 눈이 내렸던 것이다.

순간 눈 내리는 겨울 밤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이 생각나고,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라는 시와 이용악 시인의 “.../너를 남기고 온/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어쩌자고 잠을 깨어/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라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그리움’이란 시도 생각난다.

어려서부터 눈을 많이 보며 자란 나는 눈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공기가 맑은 곳이라 눈이 많이 오고, 찬 공기 속의 산골오지에 눈이 내리면 거의 녹지 않고, 다 녹을만하면 또 눈이 오고, 오고하여 다음해 봄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과 개들은 좋아서 껑충거리며 학교운동장을 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눈을 맞곤 한다.

방안에 둔 물대접까지 꽁꽁 어는 눈보라치는 한겨울 밤은 문풍지가 부르르 부르르 떨리고, 그 바람소리가 춥고 무서워 이불속으로 더욱 파고들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구들 모두 삽이나 서까래를 찾아 집앞과 길의 눈을 치우느라 바쁘다.

그런 중에서도 아이들은 쌓아놓은 눈들을 삽등으로 두드려 단단히 이겨놓고 굴을 파고 그 속에서 놀기도 한다.

바람을 막아 주어 눈 속은 오히려 따뜻하고 아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눈이 쌓인 신작로에 버스라도 한 대 지나가고 나면 아이들은 그 길에서 썰매를 탄다. 며칠 햇볕이 내리쬐어 눈들이 녹다얼다하면 눈표면이 단단해지므로 아침에 산비탈로 된 밭에 올라가 썰매를 타고 내려오기도 하고, 썰매가 없으면 삽을 거꾸로 놓고 앉아서 썰매를 타다가 눈 속에 처박히기도 한다.

또 산토끼를 잡겠다고 야산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눈이 오는 날은 아이들은 그저 즐겁고 신났다.

도시의 아침, 작은 눈이 내렸는데도 출근길 걱정을 하는 나를 돌아보며 어렸을 적 그 동심의 세계, 하얀 순백의 세상이 새삼 그리워진다. 올해는 눈꽃축제에도 참가하고, 눈꽃열차도 타러가고 싶다.

눈꽃열차를 타고 그 하얀, 한겨울에 피는 꽃을 마냥 감상하며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