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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목욕탕이 그리운 계절

대중목욕탕이 그리운 계절

by 운영자 2014.01.16

권영상작가- 2002년 한국동시문학회 상임이사
-좋은생각 월 1회 연재 중
-저서 국어시간에 읽는 동시 등


가끔 몸이 답답할 때면 대중목욕탕이 생각난다. 옷에 갇혀 살 듯 관습에 젖어 먹고살고 할 때 몸이 답답해한다.

이럴 때면 길을 가다가도 대중목욕탕의 붉은 벽돌로 지은 높은 굴뚝을 찾는다.

대중목욕탕이 없어진 지 오래다.

전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갔다. 낮고 작은 창구에 허리를 낮추어 요금을 내면 옷장 열쇠가 나온다.

그걸 들고 들어가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나면 우리는 스스럼없이 옷을 벗는다.

내 몸에 걸친 옷을 벗는 일은 어쩌면 낡은 내 일상을 벗어내는 일과도 같다.

대중목욕탕이 있을 때 우리는 노동에 젖은 일상의 피로를 그런 방식으로 벗어버렸다.

그때가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라면 내가 벗어 쌓아놓은 옷은 그야말로 한 짐이다. 그만큼 나는 위선적이었다.

그 한 짐씩이나 되는 옷으로 나를 위장하며 살았다. 하나의 몸뚱이 위에 여러 개의 낯선 옷을 바꾸어 입으며 나를 연출하듯 나는 여러 개의 얼굴로 살아왔다.

나는 마지막 남은 속옷을 벗는다. 이것마저 벗어내면 세상 앞에 알몸으로 서게 된다.

나를 이토록 대범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이제 막 발목에 차려는 고무줄 달린 옷장 열쇠이다. 그것이 나를 대범하게 한다.

나 말고도 쉬임없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 그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훌렁훌렁 옷을 벗고 발목에 이 열쇠를 찬다.

자장면 값 정도의 요금만 내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누구나 알몸으로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 그가 누구든, 목욕탕 바닥에 벌렁 누워 자든 말든 관여하지 않는다.

탕 주변을 꺼덕대며 걷는다 해도 탓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만큼 미덕이 관대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이만큼 또 자유로운 곳이 있을까. 거기엔 타올 외에 아무 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빈 알몸의 육신들뿐 신분질서가 없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오히려 편안하다.

배고프지 않고 세상 재물에 욕심낼 일이 없다.

무엇보다 그곳을 반기는 것은 세속의 물질에 잔뜩 위축된 내 몸과 소박한 영혼이다.

그 속에선 고급 브랜드의 위세에 짓눌릴 이유가 없고, 비굴할 이유가 없고 기세등등할 이유가 없다.

여러 개의 얼굴로 나를 위장할 필요도 물론 없다.

몸이 잔뜩 불면 때를 민다. 저마다 수도꼭지 앞에 앉아 몸을 비틀어대며 때를 벗기는 군상들. 그런 소탈한 목욕 풍경을 목도하며 우리는 일찍이 서민의식을 배웠다.

누구나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는 것도 배웠다.
옷장 열쇠를 되돌려주고, 목욕탕 현관 바닥에 내 신발을 던진다.

그 순간부터 나는 대중 앞에서 옷을 홀랑 벗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우리는 또 인습을 요구하는 세상과 맞닥뜨려야 한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때, 목욕탕 밖의 세계로 걸어나올 때 내 뜨거운 몸에 부딪히던 바깥 공기의 신선함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삶의 때를 벗어던지고 다시 태어나는 홀가분함이 바로 그런 기분이 아닐까.

요즘 같이 추운 날이면 한 짐이나 되는 옷을 벗어던지고 대중목욕탕 안에 들어서고 싶다. 알몸뚱이로 걸어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그 곳, 신성한 내 몸이 탈의의 자유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