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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살아 있다

전설은 살아 있다

by 운영자 2014.01.20

김민정박사
-문학박사
-시조시인


요즘 나는 전설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갖는다.

예전에 들었던 그 전설들이 죽지 않고 아직도 내 가슴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밤마다 어머니 치마폭을 잡고 졸라서 듣던 옛날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우리 동네의 미인폭포 전설이나 가까운 황지연못 전설은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 주실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은 그때마다 상황이 달라서였을까. 자꾸만 듣다보니 진짜처럼 느껴지던 이야기 중 하나가 황지연못 전설이다.

옛날에 황지에는 황씨 성을 가진 부자(富者)가 살았다. 황부자는 인색하여 하루는 노승이 시주를 왔는데, 쇠똥을 스님 바랑에 담아주며 “우리집에는 줄 게 없으니 이거나 가져가시오.”라고 하였다.

노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아이를 업고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시아버지 몰래 자기가 찧은 쌀 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해 올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더니, 노승은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 집은 이미 운이 다 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오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곧 집을 나서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뇌성벽력과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깜짝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 돌이 되어버렸고, 황부자의 집은 땅 밑으로 꺼져내려가 간 곳 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하였다.

이것이 황지연못이며, 맑은 날 물속을 들여다보면 집의 대들보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하셨다.

황부자는 이무기가 되어 그 황지연못 속에 살고 있고, 그 며느리는 지금도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서 황지쪽을 뒤돌아보며 아기를 업은 채 돌미륵이 되어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봄에 나물을 뜯으러 그 쪽으로 갈 때면 멀리 그 돌미륵이 보인다고 몇 번인가 말씀하시더니, 언제부턴가 나무들이 우거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나는 크면 언젠가 황지연못과 구사리에 가서 꼭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고 별렀었다.

그리고 못되게 살면 그렇게 천벌을 받으니, 나쁜 마음을 절대로 갖지 말고 착하게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황부자집터)에서 유래된 지명이 황지라고 한다.

어렸을 때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황지연못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으나 세월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재미있으라고 덧붙인 말씀이었는지, 어머니가 보았다는 그 서까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쟁쟁쟁 남아, 그 연못 속 어딘가에 황부자가 변해서 되었다는 이무기가 살고 있을 것 같아 그 곳에 가게 되면 남몰래 연못 속을 살피곤 한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이 황지연못에선 하루에 5000톤 이상의 맑은 물이 샘솟고 있다.

이 물이 낙동강 천 삼백 리를 굽이굽이 적시며 흘러가고 있는 한, 황지연못의 전설도 그대로 살아 낙동강 천 삼백 리를 오늘도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설이 주는 말 없는 교훈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