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아이도 한 살 더 먹기를!
내 안의 아이도 한 살 더 먹기를!
by 운영자 2014.01.28
<유경작가>
- 가천의과대학교 초빙교수
- 노인대학 및 사회교육 프로그램 강사
- 저서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미혼에서 이혼까지 등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중학교에 올라간 아이는 심야 라디오 방송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얻은 손바닥 만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라디오 크기의 세 배가 넘는 커다란 건전지를 고무줄로 칭칭 동여맸습니다.
‘한밤중에 무슨 라디오냐’, ‘도대체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는 공부가 어떻게 제대로 되겠느냐’라는 부모님의 지청구에 이불 속에 들어가 몰래 듣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에 아이를 깨우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큰 소리로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밤에 라디오 듣지 말라는 주의를 이미 들었던 데다가, 비싼 건전지가 다 날아가 버렸으니 큰일 났습니다.
무섭고 당황한 아이는 아니라고, 끄고 잤다고, 절대 켜놓고 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거짓말이 눈에 빤히 보였겠지요.
결국 아버지의 꾸중은 거짓말하는 아이라는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무서워 엉겁결에 거짓말을 하고만 아이와 거짓말하는 버릇이 들까봐 꾸지람을 한 아버지, 양쪽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쉰다섯 중년이 되었고, 큰 소리로 무섭게 야단치던 아버지는 아흔 둘 상노인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저는 문득 문득 그 때 일이 떠오릅니다. 정직한 태도를 가르쳐주기 위해 호되게 야단을 치셨겠지만,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만이 최선이었을까 하고요.
평소 거짓말을 많이 하거나 핑계를 자주 대는 아이도 아니었는데,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기회를 주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왜냐하면 그 일 이후로 저는 아버지한테 거짓말하는 아이로 보였다는 속상함에다가 심한 꾸중이 떠올라 두려움과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삼남매 중 막내이니 응석도 부리고 가까워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자신도 미처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작용을 했겠지만 유독 그 때 그 일이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오십이 넘었어도 제 안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칭찬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아이입니다. 이 일을 끄집어내서 풀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내가 혹시 아이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이제 설날이 코 앞입니다.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저는 또 아이들의 세배를 받으면서 모두가 나이를 한 살씩 더 먹겠지요.
오늘 이렇게 제 속내를 만천하에 털어놓았으니 제 안에 있는 아이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좀 더 키가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 가천의과대학교 초빙교수
- 노인대학 및 사회교육 프로그램 강사
- 저서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미혼에서 이혼까지 등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중학교에 올라간 아이는 심야 라디오 방송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얻은 손바닥 만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라디오 크기의 세 배가 넘는 커다란 건전지를 고무줄로 칭칭 동여맸습니다.
‘한밤중에 무슨 라디오냐’, ‘도대체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는 공부가 어떻게 제대로 되겠느냐’라는 부모님의 지청구에 이불 속에 들어가 몰래 듣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에 아이를 깨우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큰 소리로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밤에 라디오 듣지 말라는 주의를 이미 들었던 데다가, 비싼 건전지가 다 날아가 버렸으니 큰일 났습니다.
무섭고 당황한 아이는 아니라고, 끄고 잤다고, 절대 켜놓고 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거짓말이 눈에 빤히 보였겠지요.
결국 아버지의 꾸중은 거짓말하는 아이라는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무서워 엉겁결에 거짓말을 하고만 아이와 거짓말하는 버릇이 들까봐 꾸지람을 한 아버지, 양쪽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쉰다섯 중년이 되었고, 큰 소리로 무섭게 야단치던 아버지는 아흔 둘 상노인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저는 문득 문득 그 때 일이 떠오릅니다. 정직한 태도를 가르쳐주기 위해 호되게 야단을 치셨겠지만,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만이 최선이었을까 하고요.
평소 거짓말을 많이 하거나 핑계를 자주 대는 아이도 아니었는데,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기회를 주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왜냐하면 그 일 이후로 저는 아버지한테 거짓말하는 아이로 보였다는 속상함에다가 심한 꾸중이 떠올라 두려움과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삼남매 중 막내이니 응석도 부리고 가까워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자신도 미처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작용을 했겠지만 유독 그 때 그 일이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오십이 넘었어도 제 안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칭찬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아이입니다. 이 일을 끄집어내서 풀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내가 혹시 아이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이제 설날이 코 앞입니다.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저는 또 아이들의 세배를 받으면서 모두가 나이를 한 살씩 더 먹겠지요.
오늘 이렇게 제 속내를 만천하에 털어놓았으니 제 안에 있는 아이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좀 더 키가 자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