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사는 곳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사는 곳을 사랑한다는 것은

by 운영자 2014.02.05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보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멀리 강원도 원천에서 농촌교회를 섬기고 있는 후배가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보내온 서류봉투를 열어보니 달력이 들어 있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달력이 아니라 정성껏 스스로 만든 달력이었습니다.

인쇄를 한 종이도 여느 달력처럼 매끄럽지도 광택이 나지도 않는 수수한 달력이었습니다.

몽우리 진 연꽃 위에 잠자리가 앉아 있는 사진이 담긴 표지를 넘기니 나뭇가지에 앉은 노란 빛깔의 새 한 마리가 보입니다.

사진 아래 적힌 새 이름을 보니 ‘흰눈썹 황금새’였고, 그 사진을 찍은 곳은 ‘화천 붕어섬’이었습니다.

흰눈썹 황금새라는 새가 있었구나 하며 다시 한 번 사진을 보니, 정말로 새의 눈썹이 하얗게 선명합니다.

또 한 장을 넘기니 이번에도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번에는 막 가지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입니다.

새의 이름은 ‘버들솔새’였고, 사진을 찍은 곳은 역시 화천 붕어섬이었습니다. 궁금하여 또 한 장 3월로 넘기니, 이번에는 새 한 마리가 막 돋아나는 풀 곁에 앉아 있습니다.

이름은 ‘힝둥새’였고, 찍은 곳은 원천리 자전거길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새는 참새처럼 흔한 모습인데 이름은 처음 듣는 힝둥새였습니다.

이어지는 달력 사진에는 집을 짓기 위해 빈 가지 하나를 물고 있는 제비도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인사를 하듯 전깃줄에서 발 하나를 번쩍 들고 있는 찌르레기도 있었고, 원천리 개울에서 찍은 인형처럼 생긴 원앙새도 있었고, 알락할미새, 오색딱따구리, 붉은머리 오목눈이, 깝작도요 등의 새들이 계절에 맞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사진을 찍은 곳이 기록되어 있어 어디에 가면 그 새를 만날 수 있는지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달력이 새로웠던 것은 동네 인근에 사는 새들을 사진으로 담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요일을 해, 달, 불, 물, 나무, 쇠, 흙으로 기록한 것도 새로웠고, 각 달마다 그 달에 어울리는 이름을 정한 것도 신선했습니다.

1월은 ‘새로운 해 떠오르고 마음 다지는 달’, 2월은 ‘봄 들어서고 대보름달 뜨는 달’, 3월은 ‘개구리 잠깨어 알 낳는 달’, 4월은 ‘산에 나무 심고 제비 날아오는 달’, 5월은 ‘가정 생각하고 모심는 달’, 6월은 ‘보리 베어 그슬려 먹는 달’, 7월은 ‘불볕더위 지리한 비 가득한 달’, 8월은 ‘불볕더위 지나 가을 오는 달’, 9월은 ‘가을 오며 열매 맺고 산색 변해가는 달’, 10월은 ‘감사한 마음으로 추수하는 달’, 11월은 ‘겨울 오고 김장하는 달’, 12월은 ‘예수 오심 기뻐하며 한 해 끝맺는 달’이었습니다.

작은 달력 하나, 그러나 그 달력 안에는 내 사는 마을과 사람과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굳이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한다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런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선 곳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나만의 꽃을 피워내는 것, 그런 것이라는 것을 수수한 달력을 보며 내내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