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삶의 의미
by 운영자 2014.02.18
삶의 진실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인생의 역경계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어느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의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출가 수행자도 종종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 1905~1997)은 유대계 독일 정신의학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와 누이를 제외하고는 부모, 형제, 아내가 모두 아우슈비츠감옥에서 죽었다.
하루 보급 식량은 국 한 그릇에 완두콩 한 두알, 옷도 거의 없었고, 추위와 배고픔,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존재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다.
프랭클은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해 정신 질환 치료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로고데라피(Logotherapy)라 불리는 의미요법(Will to Meaning)이다.
고통과 아픔을 통해 생사의 문턱에서 하나의 진리를 깨달으며 여기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발견했다.
유태인 수용소에 처음 수감되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체력이 좋은 사람과 허약해 보이는 사람, 민첩하기가 다람쥐 같은 사람과 둔하게 보이는 사람, 배운 사람과 학식이 부족한 사람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수용소 생활을 함께 시작했다.
프랭클은 처음에 민첩한 사람이나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사람, 처세술이 좋은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허약하거나 요령 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체력이 좋고 민첩한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무너졌고, 허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버텨 나갔다. 프랭클은 그 이유를 점차 알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쉽게 무너진 사람들은 아무리 수단이 탁월하고 체력이 좋아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처절한 고통을 견딘 사람들은 ‘고난’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 삶의 진정성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시시각각 죽음과 고통으로 위협받으면서도 이웃 동료에게 빵을 나눠주고, 남을 위로할 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부처님께서도 “험한 여행길에서 자신보다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성자요, 이기심만 있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실존적 공허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협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경쇠약(스트레스)의 현대적 의미가 될 것이다.
또한 정신적인 영역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질병으로 옮겨간다. 곧 마음이 아프니 몸에 병이 생긴다는 뜻이다.
누구나 삶에 있어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고 고통 받기 마련이다. 이럴 때 프랭클의 교훈을 상기해보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정적인 마음에서 긍정마인드로 바꾸는 연습을 해보자. 이 사유의 전환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정운스님>
이런 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 1905~1997)은 유대계 독일 정신의학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와 누이를 제외하고는 부모, 형제, 아내가 모두 아우슈비츠감옥에서 죽었다.
하루 보급 식량은 국 한 그릇에 완두콩 한 두알, 옷도 거의 없었고, 추위와 배고픔,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존재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다.
프랭클은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해 정신 질환 치료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로고데라피(Logotherapy)라 불리는 의미요법(Will to Meaning)이다.
고통과 아픔을 통해 생사의 문턱에서 하나의 진리를 깨달으며 여기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발견했다.
유태인 수용소에 처음 수감되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체력이 좋은 사람과 허약해 보이는 사람, 민첩하기가 다람쥐 같은 사람과 둔하게 보이는 사람, 배운 사람과 학식이 부족한 사람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수용소 생활을 함께 시작했다.
프랭클은 처음에 민첩한 사람이나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사람, 처세술이 좋은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허약하거나 요령 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체력이 좋고 민첩한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무너졌고, 허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버텨 나갔다. 프랭클은 그 이유를 점차 알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쉽게 무너진 사람들은 아무리 수단이 탁월하고 체력이 좋아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처절한 고통을 견딘 사람들은 ‘고난’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 삶의 진정성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시시각각 죽음과 고통으로 위협받으면서도 이웃 동료에게 빵을 나눠주고, 남을 위로할 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부처님께서도 “험한 여행길에서 자신보다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성자요, 이기심만 있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실존적 공허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협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경쇠약(스트레스)의 현대적 의미가 될 것이다.
또한 정신적인 영역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질병으로 옮겨간다. 곧 마음이 아프니 몸에 병이 생긴다는 뜻이다.
누구나 삶에 있어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고 고통 받기 마련이다. 이럴 때 프랭클의 교훈을 상기해보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정적인 마음에서 긍정마인드로 바꾸는 연습을 해보자. 이 사유의 전환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정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