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
by 운영자 2014.02.26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만나면의 저자
모두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아쉬움과 안타까움, 분노와 고마움, 아마도 김연아 선수의 소치에서의 마지막 경기 모습을 보는 마음들은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 개인을 떠나 그는 충분히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보여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여겨집니다.
낮에 식당에 갔다가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는 열댓 명의 손님들을 보았는데, 그들의 화제도 김연아 선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는 대개 두 가지였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과 심판의 판정이 공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분노에 가까운 아쉬움은 과연 심판들의 심사가 공정했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더욱이 심판들의 눈은 일반인들의 눈과는 분명히 다른 구체적인 기준이 있을 터, 그 모든 것을 다 인정한다고 해도 아쉬움은 쉬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메달을 도둑맞았다는 말에도 공감이 되고, 소치올림픽이 아니라 수치올림픽이라고 부르는 말에도 일종의 시원함을 느낍니다.
판정에 대한 불만은 혹시 우리가 약소국이어서 불이익을 당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겹쳐 쉽게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이런 감정은 자국 선수에게 갖는 일방적인 감정일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싶습니다.
적잖은 외신에서도 심판의 판정에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피겨 선수 출신들의 평도 믿기 힘든 결과라는 의견이 적지가 않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가장 마음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김연아 선수 당사자가 아닐까 싶은데, 김연아 선수의 모습은 뜻밖입니다. 누구보다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이미 충분히 짐작했고, 그런 것에는 괘념치 않기로 했다는 듯한 모습에선 달관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메달의 색깔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며,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는 생각을 하자’고 했을 때, 생에 대한 원숙함이 느껴졌습니다.
한 길을 묵묵히 달려온 이가 자기가 택한 길에 대해 갖는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물씬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백기완 선생이 김연아에게 썼다는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부드러운/ 네 몸사위를 볼 적마다/ 춤꾼은 원래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말이/ 퍼뜩퍼뜩 들곤 했었는데/ 으뜸을 잃어버리고도/ 웃는 너는 썼구나/ 예술은 등급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구// 오늘의 이 썩어문드러진 문명을/ 강타해버린 너 연아야// 얼음보다 더 미끄러운 이 현실에서/ 마냥 으뜸 겨루기에 내몰리는 우리들은/ 이제야 너의 그 미학에서/ 한바탕 커단 울음을 배우는구나>
모든 못마땅함을 웃음으로 받는, 한 사람의 속 깊은 울음을 오랜만에 봅니다.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만나면의 저자
모두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아쉬움과 안타까움, 분노와 고마움, 아마도 김연아 선수의 소치에서의 마지막 경기 모습을 보는 마음들은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 개인을 떠나 그는 충분히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보여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여겨집니다.
낮에 식당에 갔다가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는 열댓 명의 손님들을 보았는데, 그들의 화제도 김연아 선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는 대개 두 가지였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과 심판의 판정이 공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분노에 가까운 아쉬움은 과연 심판들의 심사가 공정했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더욱이 심판들의 눈은 일반인들의 눈과는 분명히 다른 구체적인 기준이 있을 터, 그 모든 것을 다 인정한다고 해도 아쉬움은 쉬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메달을 도둑맞았다는 말에도 공감이 되고, 소치올림픽이 아니라 수치올림픽이라고 부르는 말에도 일종의 시원함을 느낍니다.
판정에 대한 불만은 혹시 우리가 약소국이어서 불이익을 당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겹쳐 쉽게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이런 감정은 자국 선수에게 갖는 일방적인 감정일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싶습니다.
적잖은 외신에서도 심판의 판정에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피겨 선수 출신들의 평도 믿기 힘든 결과라는 의견이 적지가 않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가장 마음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김연아 선수 당사자가 아닐까 싶은데, 김연아 선수의 모습은 뜻밖입니다. 누구보다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이미 충분히 짐작했고, 그런 것에는 괘념치 않기로 했다는 듯한 모습에선 달관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메달의 색깔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며,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는 생각을 하자’고 했을 때, 생에 대한 원숙함이 느껴졌습니다.
한 길을 묵묵히 달려온 이가 자기가 택한 길에 대해 갖는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물씬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백기완 선생이 김연아에게 썼다는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부드러운/ 네 몸사위를 볼 적마다/ 춤꾼은 원래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말이/ 퍼뜩퍼뜩 들곤 했었는데/ 으뜸을 잃어버리고도/ 웃는 너는 썼구나/ 예술은 등급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구// 오늘의 이 썩어문드러진 문명을/ 강타해버린 너 연아야// 얼음보다 더 미끄러운 이 현실에서/ 마냥 으뜸 겨루기에 내몰리는 우리들은/ 이제야 너의 그 미학에서/ 한바탕 커단 울음을 배우는구나>
모든 못마땅함을 웃음으로 받는, 한 사람의 속 깊은 울음을 오랜만에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