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우리가 죄송합니다

우리가 죄송합니다

by 운영자 2014.03.05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급소를 맞은 듯 마음이 너무도 아파 한동안 멍-했습니다.

반 지하 집에서 살던 당신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을 등지기 전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봉투에 담고 그 봉투에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은 글을 읽었을 때, 견디기가 힘들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탄식과 함께 눈과 마음이 젖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세상이 당신들이 세상을 떠나자 떠들썩한 관심을 보입니다. 물론 저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고요.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보게 되는 당신들의 삶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었습니다. 당신들의 집은 햇빛이 온전히 들지 않던 반지하, 마치 세상은 양지인데 당신들의 삶은 음지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도 흔하게 들고 다니는 최신 휴대전화를 두고 세 모녀 당신들은 구형 폴더 휴대전화 1대를 함께 사용했더군요. 어머니는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식당 일을 하며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요.

그나마 팔을 다쳐 그 일마저 할 수가 없었다고요. 큰딸은 병이 심하여 일을 전혀 할 수 없었고, 작은딸은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일정한 직장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절망의 끝으로 내몰려 어느 날 가게를 찾아 번개탄을 살 때, 냄비에 넣은 번개탄에 불을 붙이기 전 창문과 문 틈새로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청색테이프를 붙일 때, 그나마 세 모녀의 외로움을 달래주었을 고양이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을 때 당신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는 엄마대로 딸들은 딸들대로 서로에게 얼마나 미안했을까, 마음이 미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생의 마지막 봉투에 월세와 공과금을 넣었습니다. 돈이 없어 세상을 등지면서도 당신들이 치러야 할 마지막 돈을 봉투에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집 주인에게 죄송하다고, 정말 죄송하다 하셨지요. 집주인의 말에 의하면 당신들은 매달 정해진 날이 되면 월세와 전기, 수도, 가스비 등 공과금을 내왔는데 8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인척에게는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당신들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한 줌의 부담을 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선한 마음에 마음이 아릿합니다.
오늘도 하늘이 잔뜩 흐렸습니다.

미세먼지를 동반한 희뿌연 하늘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흐린 것이 어찌 미세먼지 뿐이겠습니까? 당신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을 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세상을 탓하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정말로 탓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부정한 돈 수백억, 수천억을 꿀꺽하고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 세상 욕을 하느라 그토록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당신들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한 우리들이 잘못했습니다.

당신들은 죄송하다며 이 땅을 떠났지만 정말 죄송한 건 당신들 앞의 우리들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