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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불시착 후유증

비행기 불시착 후유증

by 운영자 2014.03.07

<이규섭시인>-월간 <지방의 국제화> 편집장(現)
-한국신문방송인클럽 상임이사(現)
-저서 별난 사람들, 판소리 답사기행 등


극심한 스트레스 탓인가. 동유럽 여행을 다녀 온지 일주일 가까워도 피로가 쉬 풀리지 않는다.

아직도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다. 비행시간이 10시간 넘으면 지루하고 불편하다.

비좁은 이코노미좌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신다. 두 차례 주는 기내식은 소화도 제대로 안 된다. 화장실 부근 공간에서 가볍게 몸을 풀어도 허리가 뒤틀리기는 마찬가지다.

시차적응이 안 돼 잠을 설치며 힘들게 여행 일정을 마친 뒤 프라하공항에서 귀국행 체코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항공정보 안내 비디오를 지켜보다 깜짝 놀랐다.

2시간 30분 쯤 지나 러시아 영공을 지나는 데 도착지 잔여 시간이 되돌아간다. 승무원을 불러 확인 하려는데 안내방송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체코어는 알아들을 수 없고, 이어지는 영어 안내에 시스템 오류로 모스크바공항에 불시착한다는 것이다.

300여 명의 승객 가운데 대부분 한국 관광객들이지만 술렁이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성숙함을 보였다.

모스크바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으나 언제 어느 비행기로 떠날지 아무도 모른다. 미확인 정보들만 미세먼지처럼 떠돈다.

우리를 안내해준 여행사 가이드는 프라하에 남았고, 독일어를 하는 다른 여행사 가이드들도 우왕좌왕이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대사처럼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러시아 주재 대한항공 직원이 나타났다. 공항측에서 언어지원을 요청하여 퇴근 후 시내에서 곧장 달려왔다고 한다.

엔진정비 후 다음 날 오전 같은 비행기로 떠난다는 확인된 정보를 들었다. 항공사측에서 제공한 공항부근 호텔에 묵어야 한다기에 입국수속을 밟았다.

올해 1월 1일부터 한-러 비자면제협정이 발효되어 비자 없이 60일간 체류할 수 있어 불행 중 다행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인 승객이 아닌 다른 나라 승객들은 비자가 없어 공항에서 17시간 넘게 머물렀다고 한다.

호텔로비도 아수라장이고 2인 1실로 체크인 하는데도 시간이 걸려 보조역할을 자청했다. 일행과 함께 선물용으로 산 양주를 마시며 불안감을 삼켰다. 모닝콜도 제대로 될 리 없다.

전화벨이 울린 룸도 있지만 대부분 못 받았다. 100여 개의 룸을 연결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부랴부랴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출국 수속을 다시 밟았다. 공항에서 밤을 샌 승객들은 몇 시 어느 게이트에서 탑승해야 하는지 몰라 그들을 기다리는데 또 한 시간 넘게 지연됐다.

모스크바를 이륙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엔진은 제대로 정비되었는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항공기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승객 300여명을 태운 비행기를 정비하지 못한 것에 분노가 치솟았다.

비상상황을 침착하게 대처한 조종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분노를 삭인다.

자정 넘어 인천공항에서 제공한 버스로 집에 도착하니 새벽 세 시 경. 피로가 밀물져 오는데도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최근 이집트 성지순례 중 한국인 신도들이 폭탄테러를 당한 것처럼 여행의 즐거움 뒤엔 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따르는 만큼 대비하는 자세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