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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는 배움의 자세

열려 있는 배움의 자세

by 운영자 2014.03.11

3월 초순, 봄 학기가 개강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개강 전부터 어떤 이미지로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현 시대에 ‘가르치는 선생과 학생과의 진실함이 존재할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작은 언행이 어떤 학생에게는 인생의 길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요, 또 어떤 학생에게는 삶의 지혜를 얻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솔직히 나는 교단에 서 있을 때 인생의 행복을 느낀다.

나는 스님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불교학을 전공했지만 2학년 때부터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하였다.

국문과 교수님들 중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생님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십년 전에 돌아가신 유명한 시인 L교수님이다.

이 교수님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시가 나올 만큼 유명세를 탔었고, 학생들 중에는 L교수님 때문에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한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대학시절, 이 교수님 수업을 9학점 수강했었다.

L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출석을 부른 적이 없었고, 강의할 때도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당신의 시적(詩的) 세계를 토하셨다.

학생들이 지각을 하거나 수업 시간에 다른 행동을 하여도 그 학생을 야단치는 법이 없었으며, 늘 온화한 모습이었다. 기말고사에 들어오면 교수님은 학생들의 양심에 맡기고 책을 보셨는데, 고개 한번 드는 법도 없었다.

다른 사람은 L교수님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서는 틀에 짜여진 구속력이 없는 천진스런 대자유인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또 한분의 기억나는 국문과 교수님이 있다. H교수님인데, 바늘로 이마를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을 만큼 완벽과 정확성의 이미지이다.

H교수님의 어느 강좌에서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한 학생의 발표가 끝나면 교수님은 그 학생이 눈물을 쏙 뺄 만큼 과제물을 평가하셨다. 당시 2학년이었던 나는 발표 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엄청 혼을 나서 지금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교수님께 섭섭하지는 않다.

이 교수님이 당시 지도해주었던 논문 쓰는 요령을 그때 익혔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두 분 교수님의 강의 기술이나 학생 지도법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분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엄격했던 분에게는 학문의 면밀함과 정확성을, 시인에게서는 천연스러운 낭만을 배웠다.

요즘같이 교수 평가가 엄격한 때라면 학생들이 그분들에게 어떤 평가를 할까?

다양한 부류의 선생들로부터 공부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작금의 학생들은 먼 훗날에 어떤 롤모델로 자신의 삶을 설계할지 노파심이 앞선다. 불교 역사에서도 스승의 혹독한 지도와 배려가 있어 훌륭한 스님이 되신 분들이 많다.

듬직한 거목 아래에서 훌륭한 제자들이 배출되는 법이고, 그 제자는 스승의 지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타인의 존경을 받는 스님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각각의 개성 있는 선생들로부터 여러 방향의 공부 방법을 배우고, 여러 선생들로부터 다양한 삶의 양식을 배운다는 열려있는 생각을 갖는다면 어떨까 싶은데....

<정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