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늘 그물이 되자

하늘 그물이 되자

by 운영자 2014.03.12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지상에서의 마지막 의무를 감당하듯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담은 봉투 위에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 쓴 세 모녀가 이 땅을 등진 뒤에도 유사한 일들은 이어졌습니다.

사연과 과정이 달랐을 뿐 가난과 무관심을 견디지 못한 채 생을 포기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허약한 건물이 무너지듯 우리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자괴감이 참으로 컸습니다.

마침 지난 주일은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창립기념주일이었습니다.

창립 61주년을 맞는 날이었으니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의미 있다면 의미 있는 날이었지요.

하지만 그 날 저는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맡겼습니다. 뭐라 말하기 전 듣고 싶었습니다.

이 땅의 아픔을 두고는 그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하늘의 꾸중을 천둥소리처럼 듣고 싶었던 것이었지요.

피에르 신부는 그의 책 <단순한 기쁨>에서 성전이 거룩한 의미를 갖게 되는 근거를 이야기합니다.

성전이 거룩한 것은 성전의 외양을 장식하는 대리석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전이 있어 그 주변에 집 없는 자가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거룩함의 근거였습니다.

성전이 있기에 주변에 그 누구도 배고픈 자가 없고 헐벗은 자가 없는 것, 바로 그것에서 거룩함의 근거를 찾는 이야기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우리말에 ‘든거지난부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가난하여 거지 형편이면서, 밖으로는 부자같이 보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든부자난거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는 부자면서도 밖으로는 거지같이 보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내면의 세계는 오히려 가난하기 그지없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싶습니다.

창립기념주일이 지나고 다시 맞은 주일, 교우들과 함께 눈을 뜨게 된 소경 이야기를 통해 하늘 그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눈 먼 사람이 눈을 뜨는 모습을 보면, 그에게 손을 대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실 때 그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사람을 사물처럼 바라보았던 것이지요.

노자의 도덕경 73장에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 그물은 넓고 성기어서 허술한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하늘 그물은 결코 촘촘해 보이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잘 되는 모습도 얼마든지 보게 되니, 더없이 허술해 보이지요.

그러나 사람 눈에는 허술하게 보일지라도 무엇 하나 빠뜨리는 게 없는 것이 하늘 그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땅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하늘 그물이 되는 것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 무엇도 빠뜨리지 않는 하늘 그물이 되어 이웃의 작은 아픔과 탄식과 눈물을 함께 아파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땅이 회복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