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이 담긴 이야기가 그립다
체온이 담긴 이야기가 그립다
by 운영자 2014.03.19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대개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옛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보물을 땅속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 옛날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땅속에 보물을 묻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언제 어디서 누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어서 피신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땅을 파고 보물을 묻어두는 것이 그 중 안전한 방법이 되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보물을 땅속에 묻을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보물을 담아두는 그릇을 잘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그릇에 담아 묻으면 나무가 썩으면서 보물이 상할 수 있었고, 쇠로 만든 그릇에 담으면 쇠에 녹이 나면서 보물을 망가뜨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담을 때 가장 좋은 그릇은 질그릇이었습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속에 묻어도 변질될 염려가 없었습니다.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그릇이고 값도 쌌지만, 보물을 담기에는 가장 좋은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서울의 한 독서모임에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저자와의 대화 시간으로 동화책 <네가 치는 거미줄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빙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쁜 세상을 바로 옆에 두고 그렇게 둘러앉아 묻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여겨졌습니다.
참석한 이들과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전 먼저 저자로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 소중한 것이 이야기라 여겨졌습니다. 숲이 사라지며 메아리가 사라지듯이 어느 순간 우리 삶속에 이야기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엔 광고와 독백이 들어찼습니다. 그럴듯하게 말하며 다가오지만 광고 안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는 이는 있지만 듣는 이가 없는 것이 독백입니다.
화려하고 소란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드문 세상,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이작 디네젠은 “어떠한 슬픔도 그대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 이야기를 남과 나누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내게 찾아온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지도 못하고,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를 않습니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이야기가 없이 그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로렌스 반 텔 포스트는 말합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이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말은 낯설지만 오늘 우리 삶이 왜 메마르고 위태한 것인지를 찬찬히 돌아보게 합니다.
땅에 묻는 보석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질그릇이듯, 삶의 진실을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이야기입니다.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가슴에서 꺼낸 자신의 체온이 담긴 이야기 말이지요.
수많은 소식과 정보들이 손쉽게 오고가는 이 세상 속에서 정말로 그리운 것은 누군가의 체온이 담긴, 그의 가슴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대개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옛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보물을 땅속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 옛날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땅속에 보물을 묻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언제 어디서 누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어서 피신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땅을 파고 보물을 묻어두는 것이 그 중 안전한 방법이 되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보물을 땅속에 묻을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보물을 담아두는 그릇을 잘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그릇에 담아 묻으면 나무가 썩으면서 보물이 상할 수 있었고, 쇠로 만든 그릇에 담으면 쇠에 녹이 나면서 보물을 망가뜨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담을 때 가장 좋은 그릇은 질그릇이었습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속에 묻어도 변질될 염려가 없었습니다.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그릇이고 값도 쌌지만, 보물을 담기에는 가장 좋은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서울의 한 독서모임에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저자와의 대화 시간으로 동화책 <네가 치는 거미줄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빙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쁜 세상을 바로 옆에 두고 그렇게 둘러앉아 묻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여겨졌습니다.
참석한 이들과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전 먼저 저자로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 소중한 것이 이야기라 여겨졌습니다. 숲이 사라지며 메아리가 사라지듯이 어느 순간 우리 삶속에 이야기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엔 광고와 독백이 들어찼습니다. 그럴듯하게 말하며 다가오지만 광고 안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는 이는 있지만 듣는 이가 없는 것이 독백입니다.
화려하고 소란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드문 세상,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이작 디네젠은 “어떠한 슬픔도 그대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 이야기를 남과 나누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내게 찾아온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지도 못하고,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를 않습니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이야기가 없이 그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로렌스 반 텔 포스트는 말합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이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말은 낯설지만 오늘 우리 삶이 왜 메마르고 위태한 것인지를 찬찬히 돌아보게 합니다.
땅에 묻는 보석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질그릇이듯, 삶의 진실을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이야기입니다.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가슴에서 꺼낸 자신의 체온이 담긴 이야기 말이지요.
수많은 소식과 정보들이 손쉽게 오고가는 이 세상 속에서 정말로 그리운 것은 누군가의 체온이 담긴, 그의 가슴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