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청에 서면

대청에 서면

by 운영자 2014.03.31

<김민정박사>
- 문학박사
- 시조시인

흐르는 구름하며 제멋 겨운 나무하며 바람소리 산새소리 데불고 살 줄 아는 설악은 기골장대한 늠름한 사내였네

한 치 키를 더해 본들 여전히 높은 하늘 팔 벌려 안아본들 여전히 넓은 세상 인간은 어느 귀퉁이 자기 성을 쌓고 있나

- 졸시, 「대청에 서면」 전문

설악은 겨울이라야 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눈 쌓인 겨울에 보면 산 능선의 기골이 제대로 드러나 왜 산의 이름이 설악(雪嶽)인지를 알게 해 준다.

갈비뼈를 드러내듯이 산의 능선을 드러낸 겨울 설악산의 위용은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아니라 남성적인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흐르는 구름을 포용하고 자기들 멋대로인 나무와 풀을 자라게 하고 가지가지 산새소리, 바람소리도 들으면서 묵묵히 서 있는 설악산은 너그럽고 늠름한 사내대장부를 연상시킨다.

설악산을 오르며 산의 흙냄새, 나무냄새, 풀냄새를 코로 맡으며, 그 부드러운 흙의 촉감과 맑은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푸른 나무와 풀과 맑은 물을 눈으로 보고, 새소리 바람소리를 귀로 듣는다.

모든 오감을 동원하여 산의 모습을 보고 느낀다. 산은 산을 찾는 나에게 그들의 에너지로 나를 충전시켜준다.

맑은 햇빛과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조화를 이루어 한없이 싱그럽고 아름다운 날이다.

광물과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산이 모든 것을 감싸준다. 포근하다. 아늑하다.

행복하다. 대청봉에 이르면 낮은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어느 산이든 정상의 능선부근 나무들은 바람을 맞아 자라지 못하고 낮게낮게 엎드려 있다.

산정에서 부는 바람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여 살아남기 위한 겸손한 삶의 자세일까?

대청봉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20년 전에 올랐던 대청봉, 지금부터 20년 후에 나는 다시 이곳에 오를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는 오지 못할까?

모든 것은 단 한 번밖에 실현될 수 없는 일회성이다. 그래서 우리의 매순간은 아주 소중한 것이겠지.

똑같이 반복되는 매일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삶은 똑같지가 않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건강이 다를 수도 있고, 사랑의 강도가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변화된 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지속성과 오늘의 변화성 속에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을 선택해야할지 순간마다 고민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지….

대청봉에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속초시가 보이고, 주변의 설악산 능선들이, 바위들이 보인다.

이렇게 대자연 속에 서면 인간은 참으로 작아 뵈는데, 인간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고 있을까?

제각각 자기의 성을 쌓기 위해 개미집을 쌓듯 자신들의 영역을 쌓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청봉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팔도 벌려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늘도 낮아지지 않고, 우주도 여전히 넓다.

나는 넓은 우주 속의 한 작은 티끌인 인간일 뿐이다. 좀 더 겸허하게, 진지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