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마저 좋아
벚꽃마저 좋아
by 운영자 2014.04.02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는 일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이장(移葬)을 하던 날,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는 막내 동생의 유골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은 그 해 가을 생각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만한 세월이면 온전히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과는 달리 동생은 유골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볕 아래 여전히 남아 있는 동생의 모습을 한동안 마주하며 우리 삶의 덧없음을 내내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생각 위로 노란 나비 한 마리 무심히 날아갔고요. 조선시대 시인 중 박은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평생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병을 얻은 아내는 박은의 나이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내마저 죽고 나니’라는 시에서 박은은 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외로운 등불 그림자만 짝하고 앉았다가/ 차가운 벌레소리 누워서 듣네/ 상대해 줄 사람 이제는 없어/ 온갖 시름만 찾아드네/ 평생 농사를 지으면 살자 기약했던/ 아내마저 갑자기 죽고 나니/ 사람의 목숨이란 게 어찌 오래 가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쉬 마를 테지’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소나기가 한 바탕 쏟아지고 나면 소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이겠지요.
소나기 물러가고 햇빛 쨍하니 쏟아지면 고였던 빗물은 언제였나 싶게 마르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의 죽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대목에서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침 안개’와 같고 ‘풀의 꽃’ 같다는 말보다도 더욱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 옆으로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겨울의 눈곱을 떨어내듯 봉오리를 감싸고 있던 우중충한 덮개를 떨어뜨리더니, 한 순간 꽃무더기로 피어납니다.
나무 전체가 하나의 꽃송이가 된 듯싶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함성을 지르듯, 폭죽을 터뜨리듯 눈부신 꽃으로 피었습니다.
“어, 어, 꽃이 피었네. 언제 이렇게 피었지?” 활짝 핀 목련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고작 그것밖엔 없는 듯 오고가다 꽃을 보고 화들짝 놀라 하는 말 대개가 비슷한데, 이런, 어느 샌가 꽃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직 다 피지 않은 꽃송이도 눈에 띄는데 벌써 떨어지는 꽃잎이 발에 밟힙니다. 아기 발자국 닮은 모양으로 떨어진 순백의 꽃잎은 ‘살아갈 시간이 많지 않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자기를 밟는 발길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건넵니다.
김지하의 ‘새봄’이라는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한 순간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방 지고 마는 벚꽃을 보니 한결같은 소나무가 좋은데, 소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다는 대목이 절창처럼 여겨집니다.
금방 지나가고 마는 봄날처럼 잠깐 뿐인 우리네 인생, 그럴수록 덧없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소나무 좋아하듯 벚꽃마저 좋아하는 그 일이 말이지요.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는 일들은 곳곳에 있습니다. 이장(移葬)을 하던 날,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는 막내 동생의 유골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은 그 해 가을 생각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만한 세월이면 온전히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과는 달리 동생은 유골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볕 아래 여전히 남아 있는 동생의 모습을 한동안 마주하며 우리 삶의 덧없음을 내내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생각 위로 노란 나비 한 마리 무심히 날아갔고요. 조선시대 시인 중 박은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평생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병을 얻은 아내는 박은의 나이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내마저 죽고 나니’라는 시에서 박은은 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외로운 등불 그림자만 짝하고 앉았다가/ 차가운 벌레소리 누워서 듣네/ 상대해 줄 사람 이제는 없어/ 온갖 시름만 찾아드네/ 평생 농사를 지으면 살자 기약했던/ 아내마저 갑자기 죽고 나니/ 사람의 목숨이란 게 어찌 오래 가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쉬 마를 테지’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소나기가 한 바탕 쏟아지고 나면 소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이겠지요.
소나기 물러가고 햇빛 쨍하니 쏟아지면 고였던 빗물은 언제였나 싶게 마르고 맙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의 죽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대목에서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침 안개’와 같고 ‘풀의 꽃’ 같다는 말보다도 더욱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 옆으로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겨울의 눈곱을 떨어내듯 봉오리를 감싸고 있던 우중충한 덮개를 떨어뜨리더니, 한 순간 꽃무더기로 피어납니다.
나무 전체가 하나의 꽃송이가 된 듯싶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함성을 지르듯, 폭죽을 터뜨리듯 눈부신 꽃으로 피었습니다.
“어, 어, 꽃이 피었네. 언제 이렇게 피었지?” 활짝 핀 목련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고작 그것밖엔 없는 듯 오고가다 꽃을 보고 화들짝 놀라 하는 말 대개가 비슷한데, 이런, 어느 샌가 꽃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직 다 피지 않은 꽃송이도 눈에 띄는데 벌써 떨어지는 꽃잎이 발에 밟힙니다. 아기 발자국 닮은 모양으로 떨어진 순백의 꽃잎은 ‘살아갈 시간이 많지 않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자기를 밟는 발길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건넵니다.
김지하의 ‘새봄’이라는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한 순간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방 지고 마는 벚꽃을 보니 한결같은 소나무가 좋은데, 소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다는 대목이 절창처럼 여겨집니다.
금방 지나가고 마는 봄날처럼 잠깐 뿐인 우리네 인생, 그럴수록 덧없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소나무 좋아하듯 벚꽃마저 좋아하는 그 일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