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연가
지리산 연가
by 운영자 2014.04.14
<김민정박사>
- 문학박사
- 시조시인
산이 산을 부르고 / 인간이 인간을 부르는// 넉넉한 그대 품에 / 안기고 안기는 건// 바람뿐 아니었더라 / 구름뿐이 아니더라// 사무침을 불러 모아 / 우렁우렁 산이 울면// 한도 풀고 설움도 풀어 / 섬진강을 흘려 놓는// 지리산 자락자락을 / 휘감는 그대 사랑
- 졸시, 「지리산 연가」 첫째수와 셋째 수
설악산이 기골이 살아나는 남성적인 산이라면 지리산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 안는 여성적인 산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 몇 년 전 여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 한 쪽은 해가 나는 청명한 날씨인데, 한 쪽은 짙은 안개가 낀 흐린 날씨라 그 대조가 너무나 신비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날씨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지리산을 오르면서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청준의 ‘서편제’를 생각했다. 그리고 김지하의 ‘지리산’이라는 시와 또 영화 ‘남부군’을 생각하고, 영화 '서편제’를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이름이 직전리인데 6.25 때의 동족상잔 이후 ‘피아골’로 불린다는 한 맺힌 골짜기도 생각했다.
동학혁명, 여순반란, 빨치산, 6.25 등의 단어와 함께 생각나는 산, 수많은 우리의 역사와 문학 속에 등장하는 지리산은 기쁨보다 슬픔과 한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근래 우리 역사의 격동기와 운명을 같이한 산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송화가 부르는 서러운 판소리가락이 묻어날 듯한 산이다.
개봉 당시 압도적인 칭찬과 화제거리였던 영화 ‘서편제’는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가 배경이다.
동호는 소릿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릿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갓집 잔칫집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은 그 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아기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치는 법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동호는 사람들의 멸시와 북치는 것이 싫어 집을 뛰쳐나간다.
유봉은 송화가 동호의 뒤를 따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사죄하고 죽는다.
이 후도 소리꾼으로서의 송화의 비참한 삶은 계속되고….
이러한 깊은 지리산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 물, 물은 흐르는 장소에 따라, 만나는 사물에 따라, 양에 따라 소리도, 모양도, 색깔도, 이름도 다르다.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폭포소리를 내기도 하고, 골짜기를 만나면 졸졸 거리기도 하고, 넓고 깊은 강물이 되면 소리없이 흐르기도 한다.
많이 모여 흐를 때는 짙은 색깔을 내기도 하고, 바위 등에 부딪치면 흰 피를 연상하도록 하얀 모습으로 흐르기도 하고, 투명하고 조용하게 물 속의 모습들을 다 비추면서 흐르기도 한다.
그래서 도교에서는 가장 높은 선의 경지를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고 했던가.
가장 좋은 삶은 물처럼 깨끗하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며 흘러가는 것이다. 웅장하고 넉넉해서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한 산, 그 속에서 인간도 시비를 가리기 전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타이르며 앉아 있는 듯한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 문학박사
- 시조시인
산이 산을 부르고 / 인간이 인간을 부르는// 넉넉한 그대 품에 / 안기고 안기는 건// 바람뿐 아니었더라 / 구름뿐이 아니더라// 사무침을 불러 모아 / 우렁우렁 산이 울면// 한도 풀고 설움도 풀어 / 섬진강을 흘려 놓는// 지리산 자락자락을 / 휘감는 그대 사랑
- 졸시, 「지리산 연가」 첫째수와 셋째 수
설악산이 기골이 살아나는 남성적인 산이라면 지리산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 안는 여성적인 산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 몇 년 전 여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 한 쪽은 해가 나는 청명한 날씨인데, 한 쪽은 짙은 안개가 낀 흐린 날씨라 그 대조가 너무나 신비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날씨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지리산을 오르면서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청준의 ‘서편제’를 생각했다. 그리고 김지하의 ‘지리산’이라는 시와 또 영화 ‘남부군’을 생각하고, 영화 '서편제’를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이름이 직전리인데 6.25 때의 동족상잔 이후 ‘피아골’로 불린다는 한 맺힌 골짜기도 생각했다.
동학혁명, 여순반란, 빨치산, 6.25 등의 단어와 함께 생각나는 산, 수많은 우리의 역사와 문학 속에 등장하는 지리산은 기쁨보다 슬픔과 한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근래 우리 역사의 격동기와 운명을 같이한 산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송화가 부르는 서러운 판소리가락이 묻어날 듯한 산이다.
개봉 당시 압도적인 칭찬과 화제거리였던 영화 ‘서편제’는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가 배경이다.
동호는 소릿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릿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갓집 잔칫집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은 그 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아기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치는 법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동호는 사람들의 멸시와 북치는 것이 싫어 집을 뛰쳐나간다.
유봉은 송화가 동호의 뒤를 따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사죄하고 죽는다.
이 후도 소리꾼으로서의 송화의 비참한 삶은 계속되고….
이러한 깊은 지리산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 물, 물은 흐르는 장소에 따라, 만나는 사물에 따라, 양에 따라 소리도, 모양도, 색깔도, 이름도 다르다.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폭포소리를 내기도 하고, 골짜기를 만나면 졸졸 거리기도 하고, 넓고 깊은 강물이 되면 소리없이 흐르기도 한다.
많이 모여 흐를 때는 짙은 색깔을 내기도 하고, 바위 등에 부딪치면 흰 피를 연상하도록 하얀 모습으로 흐르기도 하고, 투명하고 조용하게 물 속의 모습들을 다 비추면서 흐르기도 한다.
그래서 도교에서는 가장 높은 선의 경지를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고 했던가.
가장 좋은 삶은 물처럼 깨끗하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며 흘러가는 것이다. 웅장하고 넉넉해서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한 산, 그 속에서 인간도 시비를 가리기 전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타이르며 앉아 있는 듯한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