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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by 운영자 2014.04.16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눈부신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봄꽃의 특징 중 하나는 잎보다도 꽃이 먼저 핀다는데 있습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등 잎을 잊은 채 꽃으로만 피어난 봄꽃을 보노라면 삶의 열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것 잊고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불타오를 때가 언제였던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봄꽃 앞에 선다는 것은 안도현 시인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물었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질문 앞에 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봄꽃이 웃음으로 던지는 질문이 소중하다 싶습니다.

어느 샌가 꽃잎이 집니다. 꽃은 지면서도 꽃, 진 뒤에도 꽃입니다.

발에 밟히면서도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자기를 밟는 걸음에 전하니 말이지요.

끝까지 아름답기는 쉽지 않은 일, 그 쉽지 않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꽃은 보여줍니다.

잠깐 사이 꽃과 잎이 어울리며 어느새 나무엔 녹색의 빛깔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파스텔풍의 연초록 나뭇잎 빛깔은 벼가 잘 익은 가을의 황금 들판의 빛깔과 함께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빛깔로 남아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는 한 분이 담쟁이덩굴 이야기를 했습니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을 보고는 너무도 신기했다는 것입니다.

바닥 아래쪽 부분은 여전히 시커먼 빛깔인데, 꼭대기 부근엔 파랗고 윤기 나는 싹이 돋아나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나무인데도 마치 서로 다른 나무인 것처럼 아래쪽의 모습과 위쪽의 모습이 너무도 달랐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마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감나무 아래였습니다. 담쟁이덩굴 이야기를 하는 이에게 감나무 이파리를 가리켰습니다.

막 감나무에서도 아기 손톱 같은 이파리가 돋아나고 있었거든요.

감나무를 바라보던 이가 깜짝 놀라며 감탄을 합니다.

“어? 감나무도 그러네요!”

담쟁이덩굴이 그러하듯 감나무도 가지 끝에서부터 잎이 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나무마다 물이 오를 때, 나무는 가지 끝에서부터 물을 채운다고 합니다.

밑동에서부터 채워오는 것이 아니라 가지 끝부터 물을 채우기에 피어나는 이파리도 가지 끝에서부터 돋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맹자>에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흐르는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당연한 듯 웅덩이를 채운 뒤 앞으로 흘러갑니다. 바쁘다고 귀찮다고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가지 끝에서부터 물을 채우는 나무들과 웅덩이를 채운 뒤에야 앞으로 흘러가는 물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석진 곳부터 채워야 합니다.

구석진 곳을 채우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