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렌즈 속에 숨겨진 생의 비밀
망원렌즈 속에 숨겨진 생의 비밀
by 운영자 2014.04.17
<권영상작가>
- 2002년 한국동시문학회 상임이사
- 좋은생각 월 1회 연재 중
- 저서 국어시간에 읽는 동시 등
펜실베니아 프랜시스 슬로쿰 호수 근방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뜻밖의 사진을 받아보고 있다.
친구는 취미삼아 사진을 찍어 간간히 이메일로 보내오는데 벌써 3년은 족히 되었다.
일을 마치면 카메라를 차에 싣고 바깥을 나돌았다. 처음엔 주로 꽃, 풀, 열매, 정원의 나무들을 한 번에 대여섯 장씩 보내왔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산야의 사계 풍경을 보내왔다.
또 언젠가부터는 펜실베니아 산록의 광대한 일몰을 찍더니 별을 찍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다. 친구는 망원렌즈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카메라 피사체도 바뀌었다.
그의 사진에 독수리가 나타났다. 흰머리수리. 주로 서스쿼해나 강의 물고기를 낚아채는 독수리의 모습이었다.
두 발로 물고기를 움켜잡는 순간이거나, 움켜잡고 날아가는 모습, 날아가며 한 순간 물고기를 삼키는 모습들. 때로는 허공을 비익하는 날갯짓의 오묘한 움직임과 지상을 내려다보는 지배자 같이 서늘한 눈빛, 그리고 그 도도한 흰머리의 위용.......
그가 찍어보내는 독수리의 모습엔 하늘의 제왕다운 위엄이 있었다. 무인정찰기처럼 아래쪽을 향해 소리없이 하강하는 섬뜩한 모습에선 역시 왕 중의 왕다운 카리스마가 보였다.
인디언 추장들이 그들의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장식한 이유를 알만 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 전부터 내가 보아왔던 방식대로 독수리의 제왕다움을 사진 속에서 보았다.
그런데, 어제다.
나는 친구의 독수리 사진에서 전에 못 보던 것을 발견했다. 독수리의 아랫배 깃털속에 반쯤 묻힌 누런 두 발이었다. 여태까지 내가 독수리의 위엄있는 풍모나, 도도한 머리, 위협적인 날개를 보아왔다면 어제는 독수리의 허리 아래를 보았다. 허리 아래에 감추어진 두 발.
제왕의 허리 아래에 놓인 두 발은 차마 제왕의 발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무지렁이 아버지의 험하고 뭉툭한 손을 닮았다.
보리 한 톨이라도 더 건지려고 호밋자루를 쥐고 풀포기를 그러잡아 당기던 억센 손. 그런 농사꾼의 손을 닮은 발로 독수리는 먹잇감을 사로잡거나, 잡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을 것이다.
그뿐인가. 남의 먹이를 훔치거나 하위 포식자가 잡은 저녁거리를 가로채기 위해 발은 또 저렇게 염치없이 거칠어졌을 것이다.
창공을 유유히 나는 독수리는 제왕답다. 그러나 그의 허리 아래에 놓인 두 발은 먹고살기 위해 비겁해지거나 때로는 위선과 비열한 짓도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제왕다운 독수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위선을 일삼게 했을까. 생명을 가진 존재는 늘 그 문제에 부딪히면 우울해진다.
겉보기엔 번지르르 해도 그 뒤엔 슬픈 비애가 있다. 나는 요즘 친구가 보내주는, 망원렌즈 속에 숨겨진 생의 비밀을 읽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두 손을 펴 본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내 두 손이 무심코 저질렀을 나의 죄업을 생각한다.
내 머리가 높은 가치와 미덕과 향기로운 영혼을 꿈꿀 때 내 두 손은 무엇을 했나?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의 것을 움켜쥐기만 했지 베푸는 일엔 인색했다.
- 2002년 한국동시문학회 상임이사
- 좋은생각 월 1회 연재 중
- 저서 국어시간에 읽는 동시 등
펜실베니아 프랜시스 슬로쿰 호수 근방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뜻밖의 사진을 받아보고 있다.
친구는 취미삼아 사진을 찍어 간간히 이메일로 보내오는데 벌써 3년은 족히 되었다.
일을 마치면 카메라를 차에 싣고 바깥을 나돌았다. 처음엔 주로 꽃, 풀, 열매, 정원의 나무들을 한 번에 대여섯 장씩 보내왔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산야의 사계 풍경을 보내왔다.
또 언젠가부터는 펜실베니아 산록의 광대한 일몰을 찍더니 별을 찍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다. 친구는 망원렌즈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카메라 피사체도 바뀌었다.
그의 사진에 독수리가 나타났다. 흰머리수리. 주로 서스쿼해나 강의 물고기를 낚아채는 독수리의 모습이었다.
두 발로 물고기를 움켜잡는 순간이거나, 움켜잡고 날아가는 모습, 날아가며 한 순간 물고기를 삼키는 모습들. 때로는 허공을 비익하는 날갯짓의 오묘한 움직임과 지상을 내려다보는 지배자 같이 서늘한 눈빛, 그리고 그 도도한 흰머리의 위용.......
그가 찍어보내는 독수리의 모습엔 하늘의 제왕다운 위엄이 있었다. 무인정찰기처럼 아래쪽을 향해 소리없이 하강하는 섬뜩한 모습에선 역시 왕 중의 왕다운 카리스마가 보였다.
인디언 추장들이 그들의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장식한 이유를 알만 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 전부터 내가 보아왔던 방식대로 독수리의 제왕다움을 사진 속에서 보았다.
그런데, 어제다.
나는 친구의 독수리 사진에서 전에 못 보던 것을 발견했다. 독수리의 아랫배 깃털속에 반쯤 묻힌 누런 두 발이었다. 여태까지 내가 독수리의 위엄있는 풍모나, 도도한 머리, 위협적인 날개를 보아왔다면 어제는 독수리의 허리 아래를 보았다. 허리 아래에 감추어진 두 발.
제왕의 허리 아래에 놓인 두 발은 차마 제왕의 발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무지렁이 아버지의 험하고 뭉툭한 손을 닮았다.
보리 한 톨이라도 더 건지려고 호밋자루를 쥐고 풀포기를 그러잡아 당기던 억센 손. 그런 농사꾼의 손을 닮은 발로 독수리는 먹잇감을 사로잡거나, 잡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을 것이다.
그뿐인가. 남의 먹이를 훔치거나 하위 포식자가 잡은 저녁거리를 가로채기 위해 발은 또 저렇게 염치없이 거칠어졌을 것이다.
창공을 유유히 나는 독수리는 제왕답다. 그러나 그의 허리 아래에 놓인 두 발은 먹고살기 위해 비겁해지거나 때로는 위선과 비열한 짓도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제왕다운 독수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위선을 일삼게 했을까. 생명을 가진 존재는 늘 그 문제에 부딪히면 우울해진다.
겉보기엔 번지르르 해도 그 뒤엔 슬픈 비애가 있다. 나는 요즘 친구가 보내주는, 망원렌즈 속에 숨겨진 생의 비밀을 읽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두 손을 펴 본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내 두 손이 무심코 저질렀을 나의 죄업을 생각한다.
내 머리가 높은 가치와 미덕과 향기로운 영혼을 꿈꿀 때 내 두 손은 무엇을 했나?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의 것을 움켜쥐기만 했지 베푸는 일엔 인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