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벽하게 봉인 된 중세도시

완벽하게 봉인 된 중세도시

by 운영자 2014.04.18

<이규십 시인>
- 월간 <지방의 국제화> 편집장
- 한국신문방송인클럽 상임이사
- 저서 별난 사람들, 판소리 답사기행 등

보헤미안처럼 떠돌다 보헤미아의 고도(古都)와 만났다. 체코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여 ㎞ 떨어진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체스키 크룸로프는 완벽하게 봉인 된 중세도시다.

이 지역 원주민은 집시였으나 13세기 남 보헤미아의 대 지주 비트코프가 이곳에 터를 잡고 고딕 양식의 성(城)을 짓기 시작한 것이 도시의 시작이다.

그 뒤 르네상스, 바로크시대 건축물이 들어섰지만 18세기 이후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어 중세도시의 특징이 고스란히 보존됐다.

체코가 공산국가였던 시절에는 낙후된 도시에 불과했으나 배낭족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2년 300여 개 이상의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됐으니 도시 전체가 중세유적이다.

성을 잇는 플라슈티 다리(망토 다리)에 올라 바라보는 옛 도시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에 시간이 멈춘 듯 가슴이 먹먹해진다.

볼타바 강이 S자 형태로 도시를 휘감고 흐른다. 화려한 장식의 흐라데크 원통형 탑과 고딕 양식의 교회 첨탑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붉은 지붕의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 중세의 향기가 묻어난다.

영주를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했다는 라트란 거리는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지명처럼 아기자기하다.

조약돌이 반질반질한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있다. 좁은 길을 걷다보면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과 예쁜 카페, 창문에 책과 그림을 걸어놓은 낡은 서점, 알록달록 그림 간판과 앙증맞은 인형박물관이 골목길을 돌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며 길은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으로 이어진다.

페스트 퇴치기념탑이 세워진 광장주변으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시청사를 비롯하여 호텔, 기념품점, 레스토랑 등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중세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건축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고도에 슬픈 영혼과 비극적인 전설이 서리어 집시처럼 애잔하다. 성과 죽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대표화가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소녀들의 누드 그림과 불안 공포 욕망이 일그러진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그가 직접 만든 검은 침대와 책상, 거울 등이 전시된 소박한 예술 공간이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에곤 실레 어머니의 고향이다. 그는 음란한 그림쟁이라고 쫓겨나 잠시 옥살이도 했으나 이 도시를 잊지 못하고 자주 찾았다.

1918년 독감 바이러스로 임신 6개월의 아내가 숨진 지 3일 만에 자신도 감염되어 28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라트란 거리와 구시가를 연결하는 ‘이발사의 다리’에도 슬픈 전설이 서렸다. 옛날 체코의 대 영주 루돌프 2세의 아들은 정신질환 요양을 위해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 왔다가 이발사의 딸을 보고 반해 결혼했다.

그 딸은 얼마 후 목 졸려 숨진 채 발견 됐다. 광기에 사로잡힌 루돌프 2세 아들은 아내를 죽인 범인이 잡힐 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한 명씩 죽였다.

끔찍한 학살을 보다 못한 이발사는 “내가 딸을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해 사위의 어리석은 처형을 멈추게 했다. 그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발사를 추모하며 세운 다리다.

목제다리 난간에 기대어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중세도시에 얽힌 영욕을 되새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