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식과 마음 갈이

한식과 마음 갈이

by 운영자 2014.04.21

<강판권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T.S 엘리엇이 「황무지-사자의 매장」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4월 1일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4월이 왜 가장 잔인한 달이었는지 몰랐다.

인간은 경험한 후에야 깨닫는 일이 아주 많다. 특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뒤에야 많은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나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지만, 사람들은 목련, 개나리, 벚나무 등이 피운 꽃을 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4월은 어떤 사람들에게 잔인한 달이 아니라 가장 행복한 달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성묘에 대한 느낌이 강하지 않았다. 부모의 묘가 없던 시절에는 성묘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의 묘를 만들고 나니 성묘의 의미도 다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삼우제(三虞祭)를 끝낸 직후 한식(寒食)을 맞았다. 한식날에는 곳곳에서 성묘객들이 줄을 잇는다.

왜 하필 사람들은 한식날에 성묘를할까. 이 날에 성묘하는 것은 중국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文公)과 신하 개자추(介子推)간의 슬픈 사연 때문이다.

문공은 국가의 어려움을 당해 개자추를 비롯한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했다. 이 당시 진문공이 배가 고파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렸다.

19년 만에 왕위에 오른 문공은 자신을 도운 신하들에게 큰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개자추에게는 그 어떤 벼슬도 내리지 않았다.

이에 개자추는 문공 곁을 떠나 고향에 숨어 살았다. 뒤 늦게 이 사실을 안 문공은 개자추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기 위해 그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진문공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진문공의 측근은 개자추를 찾기 위해 그가 숨어 살고 있는 곳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개산(介山)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진문공은 이 사실을 알고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 날만은 더운밥 주는 것이 도리에 어긋난다 생각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도록 했다.

한식의 유래는 슬프지만 슬픈만큼 울림이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날 성묘한다.

이제 한식이 끝났으니 본격적인 농사철이다. 그러나 이제 고향에는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

농번기 때 무척 바빴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 내가 직접 농번기를 맞는 날은 없을 듯하다. 농번기가 없는 인생은 한편으로 여유로운 듯하지만, 나이가 들었으니 여유 뒤에 슬픔도 깊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만은 농번기를 맞이하고 싶다.

농번기를 준비하는 마음이 애틋하기 때문이다. 농번기를 준비하는 데 가장 먼저 할 일은 묵은 땅에 쟁기질하는 것이다.

묵은 땅에 쟁기질해서 땅 심을 위로 올리는 작업은 힘들지만 곡식을 자라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겨울 동안의 묵은 마음을 쟁기질해서 싱싱한 마음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낼 수 없다.

이처럼 한식은 조상의 무덤을 살피는 시기면서 자신의 마음을 쟁기질 하는 시기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점차 때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