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현대판 유목민’ 군인자녀 교육

‘현대판 유목민’ 군인자녀 교육

by 운영자 2014.04.25

<이규섭시인>
- 월간 <지방의 국제화> 편집장
- 한국신문방송인클럽 상임이사
- 저서 별난 사람들, 판소리, 답사기행 등

“공군인 아버지를 따라 17년 동안 13번 이사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 전학이 잦아 친구들을 사귀고 적응하는데 힘들었어요.” 직업군인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형 사립고 한민고등학교 1학년 강진솔 양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아 공부하기 좋다”며 환하게 웃는다.

직업군인가족들을 흔히 ‘현대판 유목민’에 비유한다. 근무지 따라 이사를 자주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전학이 잦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

2년 전엔 군인자녀 여중생이 전학 이후 왕따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부모와 떨어져 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학 갈 때마다 교복과 책을 다시 사줘야 하는 등 학부모들의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찮다.

국방부자료에 따르면 소령과 중령의 평균 이사 횟수는 17회, 대령은 21회라고 한다. 그 가운데 절반은 읍면 이하 지역이다 보니 자식교육 문제가 늘 걱정이다.

지난 3월 개교한 경기도 파주 한민고는 1학년 남녀 신입생 410명을 뽑았다. 오지 근무로 어려움을 겪는 군인자녀가 정원의 70%를 차지한다.

내신 200점 만점에 190점 이상으로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다. 기숙사비와 식비, 수업료도 다른 기숙학교 보다 저렴하다.

군인자녀 교육기관으로 1970년 서울 중경고등학교와 춘천제일고등학교가 설립됐으나, 중경고는 일반고로, 춘천제일고는 1982년 강원사대부고로 전환된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올바른 국가관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건학이념으로 ‘한민’고 명칭도 ‘대한민국’의 중간 두 글자를 따서 지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2주 동안 ‘창의적 글쓰기’ 특강을 하며 보람을 느꼈다.

학생들의 표정은 해맑고 푸르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싱그러움이 넘실된다. 복도에서 만날 때 마다 깍듯이 인사한다. 품성 곱고 예절 바르다.

시험과 면접을 통해 엄격하게 선발했다는 선생님들의 열성도 뜨겁다. 대부분 학교 관사에 머물며 학생들과 더불어 생활한다. 서울대 교수멘토단의 특강과 논문지도 등 학습 능률을 북돋우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한편으론 사춘기 시절, 부모와 떨어져 ‘공부의 굴레’에 갇혀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짠한 느낌도 든다. 일과도 빡빡하다.

7교시 정규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 기숙사 면학실 내 개인별 자율학습 공간에서 자기주도학습을 한 뒤 밤 11시 넘어 잠자리에 든다.

휴대폰 사용도 금지다. 교내에 설치된 스마트 영상 공중전화기로 가족과 소통한다. 그래도 “아빠 따라 전국을 떠돌며 전학하던 시절에 비해 면학분위기가 좋다”니 다행이다.

‘한민학원’ 초대 이사장인 김태영 전 국방장관도 결혼 35년 동안 29번 이사를 했기에 군인자녀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학교설립은 법령에 의해 국방부의 뒷받침이 있었지만 운영은 그가 짊어져할 몫이다.

재정적 뒷받침 계획을 물었다. “최근 발족한 사단법인 ‘군인자녀교육진흥원’을 통해 운영자금 기부를 받고 있는데 동참하는 분들이 늘어나 고무적이라”고 한다. 직업군인들이 자녀교육 걱정에서 벗어나야 국방의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