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살아 있는 수업
질문이 살아 있는 수업
by 운영자 2014.04.29
<장병호>
·순천왕운중 교장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
유태인 어머니들이 항용 자녀에게 묻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대개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 또는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하고 묻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수업시간에 얼마나 얌전했느냐에 관심을 갖는 데 반해, 유태인은 의문사항을 얼마나 해결하려고 노력했느냐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질문이란 모르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대단히 적극적인 학습활동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질문이 많다는 것은 학습의욕과 탐구열이 높다는 뜻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구태여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질문을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옛날 서당에서 학동이 질문을 하면 훈장님이 마땅치 않게 생각하여 나무라기 일쑤였다.
“이놈아! 가르쳐주는 것이나 열심히 하지, 왜 엉뚱한 데 관심을 가져?”
제자의 호기심을 격려해주기는커녕 꾸중부터 하였으니, 질문하는 학습풍토가 조성될 리가 없었다.
근대 이후의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의 일변도의 수업이다 보니 끊임없이 쏟아지는 교사의 장광설 속에서 질문할 겨를이 없었다.
지식 전달의 주입식 수업이라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이 무조건 암기만 잘하면 좋은 점수를 맞을 수가 있었다. 다행히 다수의 기능 인력이 요구되는 산업화시대에는 그러한 방식이 통했다.
그러나 창의인재를 필요로 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학생들의 사고력과 탐구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신장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수업 방법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학생 참여수업이고, 독서토론수업이며, 모둠활동을 통한 협동학습과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프로젝트학습이다.
이들 수업의 특징은 학습자를 중심에 둔다는 것과 과제 수행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부하는 즐거움을 터득하고 문제해결력과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구태의연한 수업 방식이 아직도 기세를 떨치고 있다.
학습자 중심 수업이 취지는 좋지만 진도가 늦어진다느니, 성적이 떨어진다느니, 수업 방법을 잘 모르겠다느니 하여 종래의 수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 참여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질문을 많이 허용하는 수업을 제안하고 싶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자주 주고 친절히 답변해주며, 좋은 질문에 대해서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질문도 습관이므로 당장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흥미를 끌 만한 과제를 주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다 보면 입을 닫았던 아이들이 서서히 태도가 바뀌어 손을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질문을 통한 교수법은 역사의 뿌리가 매우 깊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바로 문답법이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도 제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분발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는다(不憤不啓)”는 공자님의 말처럼 교육의 성패는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학습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도 학생의 질문을 받아내려고 애쓴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비웃음을 당할 염려가 없는 분위기에서 마음껏 질문하도록 허용하고, 학생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질문 자체를 칭찬해주며, 설사 학생의 질문이 엉뚱하더라도 강의 핵심으로 연결시켜 대답을 해준다고 한다.
『인재혁명』의 저자 조벽 교수는 학점과 연계할 정도로 질문을 중요시한다.
“저는 강의 끝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써내도록 합니다.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고 그 대신 질문의 질을 평가해서 학점을 부여합니다. 질문을 보면 학생이 강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얼마나 소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예 질문을 미리 준비해오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질문을 준비하기 위해 예습을 한 셈이 되니 학습효과가 매우 높아집니다. 그리고 질문을 써내기 위해 학생들은 예전보다 수업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됩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법이다. 학습의욕이 있어야 호기심이 생기고 의문이 일어난다. 단 그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 교사는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촉발시켜야 한다.
전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 유태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하고 묻는 가정교육에 그 해답이 있지 않을까.
“나쁜 대답은 있어도 나쁜 질문은 없다. 가장 좋은 학생은 가장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다”는 마빈 토케이어의 말처럼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스스럼없이 손을 들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교실수업이 더욱 신나고 생산적인 공간이 되리라 믿는다.
·순천왕운중 교장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
유태인 어머니들이 항용 자녀에게 묻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대개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 또는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하고 묻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수업시간에 얼마나 얌전했느냐에 관심을 갖는 데 반해, 유태인은 의문사항을 얼마나 해결하려고 노력했느냐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질문이란 모르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대단히 적극적인 학습활동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질문이 많다는 것은 학습의욕과 탐구열이 높다는 뜻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구태여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질문을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옛날 서당에서 학동이 질문을 하면 훈장님이 마땅치 않게 생각하여 나무라기 일쑤였다.
“이놈아! 가르쳐주는 것이나 열심히 하지, 왜 엉뚱한 데 관심을 가져?”
제자의 호기심을 격려해주기는커녕 꾸중부터 하였으니, 질문하는 학습풍토가 조성될 리가 없었다.
근대 이후의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의 일변도의 수업이다 보니 끊임없이 쏟아지는 교사의 장광설 속에서 질문할 겨를이 없었다.
지식 전달의 주입식 수업이라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이 무조건 암기만 잘하면 좋은 점수를 맞을 수가 있었다. 다행히 다수의 기능 인력이 요구되는 산업화시대에는 그러한 방식이 통했다.
그러나 창의인재를 필요로 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학생들의 사고력과 탐구력을 키우고 창의력을 신장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수업 방법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학생 참여수업이고, 독서토론수업이며, 모둠활동을 통한 협동학습과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프로젝트학습이다.
이들 수업의 특징은 학습자를 중심에 둔다는 것과 과제 수행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부하는 즐거움을 터득하고 문제해결력과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구태의연한 수업 방식이 아직도 기세를 떨치고 있다.
학습자 중심 수업이 취지는 좋지만 진도가 늦어진다느니, 성적이 떨어진다느니, 수업 방법을 잘 모르겠다느니 하여 종래의 수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 참여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질문을 많이 허용하는 수업을 제안하고 싶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자주 주고 친절히 답변해주며, 좋은 질문에 대해서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질문도 습관이므로 당장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흥미를 끌 만한 과제를 주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다 보면 입을 닫았던 아이들이 서서히 태도가 바뀌어 손을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질문을 통한 교수법은 역사의 뿌리가 매우 깊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바로 문답법이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도 제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분발하지 않으면 깨우쳐주지 않는다(不憤不啓)”는 공자님의 말처럼 교육의 성패는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학습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도 학생의 질문을 받아내려고 애쓴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비웃음을 당할 염려가 없는 분위기에서 마음껏 질문하도록 허용하고, 학생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질문 자체를 칭찬해주며, 설사 학생의 질문이 엉뚱하더라도 강의 핵심으로 연결시켜 대답을 해준다고 한다.
『인재혁명』의 저자 조벽 교수는 학점과 연계할 정도로 질문을 중요시한다.
“저는 강의 끝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써내도록 합니다.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고 그 대신 질문의 질을 평가해서 학점을 부여합니다. 질문을 보면 학생이 강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얼마나 소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예 질문을 미리 준비해오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질문을 준비하기 위해 예습을 한 셈이 되니 학습효과가 매우 높아집니다. 그리고 질문을 써내기 위해 학생들은 예전보다 수업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됩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법이다. 학습의욕이 있어야 호기심이 생기고 의문이 일어난다. 단 그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 교사는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촉발시켜야 한다.
전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 유태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하고 묻는 가정교육에 그 해답이 있지 않을까.
“나쁜 대답은 있어도 나쁜 질문은 없다. 가장 좋은 학생은 가장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다”는 마빈 토케이어의 말처럼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스스럼없이 손을 들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교실수업이 더욱 신나고 생산적인 공간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