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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서 제 몫 다하기

제자리서 제 몫 다하기

by 운영자 2014.05.09

<이규섭시인>
- 월간 <지방의 국제화>편집장
- 한국신문방송인클럽 상임이사
- 저서 별난 사람들, 판소리 답사기행 등

“지하철 고장날까봐 한 시간 전에 도착 했죠” 결혼식장에서 만난 후배의 조크다. ‘약속 시간 지키려면 지하철을 이용하세요’란 표어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지하철 추돌사고는 안전 불감증이 부른 원시적 사고다.

신호계통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사흘을 더 달렸다니 어처구니없다. 빠르고 안전하다는 지하철이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지하철이 됐으니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여객선도 엔진 고장으로 회항했다. 같은 날 거제에서는 엔진고장으로 해상에 멈춰선 유람선 승객을 다른 배로 옮겨 귀항시켰다.

지난 3월엔 비행기 엔진이상으로 모스크바공항에 불시착해 공포에 떨었던 아찔한 경험이 있었으니 이제 무엇을 타야 안전할지 막막하다.

하늘과 땅, 바다가 ‘지뢰밭’이다. 댐·도로·항만 등 국가 기반 시설은 물론 안전이 결여된 놀이시설, 청소년 수련원, 붕괴위험의 낡은 교실 등 불안하지 않는 곳이 없다.

멀티플렉스 극장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불이라도 나면 미로 같은 비상구를 어떻게 탈출할지 걱정이 앞선다. 영화 상영 전에 비상 탈출 경로를 안내하지만 건물의 비상 시설 관리는 엉망이다. ‘세월호 현상’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되풀이 되는 대형 인재(人災)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현상’이다. 사고수습이 끝나면 고위 관료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물러날 것이다.

규정을 고치고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수선을 떨겠지만 시스템이 없어 사고가 난 게 아니라 매뉴얼을 거들떠보지 않는 ‘설마와 방심’이 뿌리 깊게 내린 탓이다.

물러난 관료들은 ‘전관예우’ 대접을 받으며 관계 기관이나 업체에 재취업하고, 정부의 감시·감독 기능에 방패 역할을 할 것이다. 차제에 ‘관(官)피아(관료 마피아)’의 악순한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사회의 고질적 현상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태수습과정에서 정부는 우왕좌왕 미숙함과 문제점을 드러내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하는 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생때같은 아이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실종자가족들에게 ‘희망 고문’을 한 무책임한 언론이나 이번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은 불신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사회를 멍들게 할 뿐이다.

후진성 참사의 불명예를 씻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사회에 칡뿌리처럼 엉킨 불신과 적당주의를 척결하는 게 급선무다. 거창한 국가 개조나 의식개혁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면 된다.

세월호 선장이 제 역할을 했으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선박 과적도 규정을 지켰으면 쏠림 현상이 없었을 것이다. 신호계통의 이상을 제때 고쳤어도 지하철 추돌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소한 교통사고도 법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는 과연 내 위치에서 제 몫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