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하인리히법칙
세월호와 하인리히법칙
by 운영자 2014.05.14
<장병호>
- 순천왕운중 교장
참으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달 4월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바다에서 침몰했다. 그 배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까지 무려 47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날부터 모든 언론과 방송 매체가 진도 해역에 집중되었고, 국민의 눈과 귀도 함께 그곳으로 쏠렸다. ‘혹시나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으려나’밑바닥을 드러내며 뒤집혔던 배가 완전히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우리는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츰 밝혀지는 것을 보니, 도저히 기적을 바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선박은 하늘의 도움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라 했는데, 선박은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사고 여객선은 그야말로 부실 투성이었다. 건조한 지 20년이 넘는 배를 사들여와 선실을 증축한데다가, 화물을 적정량보다 서너 배 이상 많이 실었다.
그리고 화물을 실었으면 흔들리지 않도록 선체에 단단히 결박해야 하는데, 그 점에도 소홀했다. 무엇보다 화물 과적 때문에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기준량보다 덜 채웠다는 것이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선박 운항의 기본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안전장치만 꼼꼼히 했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풍랑도 없고, 암초도 없는 바다에서 배가 그리 맥없이 넘어가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사고 선박은 출항 직후부터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한다.
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배가 인천대교를 지날 무렵 15도 정도 왼쪽으로 기우뚱하면서 선실의 쓰레기통과 음료수 용기가 뒹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 당일 아침에도 배가 바다 한 가운데 멈춰 있어서 웬일인가 싶었더라는 진도 해역 어부들의 목격담이 있는 것을 보면, 선박 관계자들은 이상증세를 감지하고도 그것을 무시하고 운항을 강행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월호의 사고는 ‘하인리히법칙’을 생각나게 한다.
미국 보험회사의 관리감독관인 하인리히는 다년간 노동 재해의 사고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그에 따르면, 노동 현장에서 중상자가 한 명 발생하기까지는 유사한 원인에 의한 부상자가 29명 발생했으며, 또한 위험은 모면했지만 부상을 당할 뻔했던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이 나왔다고 한다.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하인리히법칙은 큰 재난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이전부터 징후를 보인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사소한 조짐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철저히 살피고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세월호 역시 처음에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신속히 조치했더라면 엄청난 비극은 막을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성이나 시민의식 함양 따위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불이니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니 하여 겉모습은 번드레하지만 내용은 대나무 속처럼 비어 있는 것이 평형수를 비운 채 운항한 세월호의 불안정한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이 가다듬어야 할 것은 ‘기본에 충실하자!’가 아닌가 싶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500년 전의 조상님도 경계하지 않았던가. 아울러 우리에게 만연한 무사안일주의와 적당주의, 안전 불감증에 대해서도 통렬한 반성이 있었으면 한다.
‘설마 그러려고?’나 ‘뭐 이대로 잘 되겠지!’하는 터무니없는 자만심과 낙관주의가 화를 키운다는 것을 명심하고, 작은 것부터 꼼꼼히 살피고 챙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만이 앞으로 터질지도 모를 제2의 참극을 막을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 순천왕운중 교장
참으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달 4월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바다에서 침몰했다. 그 배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까지 무려 47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날부터 모든 언론과 방송 매체가 진도 해역에 집중되었고, 국민의 눈과 귀도 함께 그곳으로 쏠렸다. ‘혹시나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으려나’밑바닥을 드러내며 뒤집혔던 배가 완전히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에도 우리는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츰 밝혀지는 것을 보니, 도저히 기적을 바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선박은 하늘의 도움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라 했는데, 선박은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사고 여객선은 그야말로 부실 투성이었다. 건조한 지 20년이 넘는 배를 사들여와 선실을 증축한데다가, 화물을 적정량보다 서너 배 이상 많이 실었다.
그리고 화물을 실었으면 흔들리지 않도록 선체에 단단히 결박해야 하는데, 그 점에도 소홀했다. 무엇보다 화물 과적 때문에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기준량보다 덜 채웠다는 것이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선박 운항의 기본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안전장치만 꼼꼼히 했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풍랑도 없고, 암초도 없는 바다에서 배가 그리 맥없이 넘어가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사고 선박은 출항 직후부터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한다.
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배가 인천대교를 지날 무렵 15도 정도 왼쪽으로 기우뚱하면서 선실의 쓰레기통과 음료수 용기가 뒹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 당일 아침에도 배가 바다 한 가운데 멈춰 있어서 웬일인가 싶었더라는 진도 해역 어부들의 목격담이 있는 것을 보면, 선박 관계자들은 이상증세를 감지하고도 그것을 무시하고 운항을 강행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월호의 사고는 ‘하인리히법칙’을 생각나게 한다.
미국 보험회사의 관리감독관인 하인리히는 다년간 노동 재해의 사고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그에 따르면, 노동 현장에서 중상자가 한 명 발생하기까지는 유사한 원인에 의한 부상자가 29명 발생했으며, 또한 위험은 모면했지만 부상을 당할 뻔했던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이 나왔다고 한다.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하인리히법칙은 큰 재난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이전부터 징후를 보인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사소한 조짐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철저히 살피고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세월호 역시 처음에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신속히 조치했더라면 엄청난 비극은 막을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성이나 시민의식 함양 따위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불이니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니 하여 겉모습은 번드레하지만 내용은 대나무 속처럼 비어 있는 것이 평형수를 비운 채 운항한 세월호의 불안정한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이 가다듬어야 할 것은 ‘기본에 충실하자!’가 아닌가 싶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500년 전의 조상님도 경계하지 않았던가. 아울러 우리에게 만연한 무사안일주의와 적당주의, 안전 불감증에 대해서도 통렬한 반성이 있었으면 한다.
‘설마 그러려고?’나 ‘뭐 이대로 잘 되겠지!’하는 터무니없는 자만심과 낙관주의가 화를 키운다는 것을 명심하고, 작은 것부터 꼼꼼히 살피고 챙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만이 앞으로 터질지도 모를 제2의 참극을 막을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