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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와 설렘

찔레와 설렘

by 운영자 2014.06.02

대한민국의 5월은 찬란했다. 오월을 빛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장미과의 찔레이다. 들과 산에 가면 찔레 향기가 코를 혹사시킨다.찔레는 기본적으로 하얀색이지만 붉은 색을 띠는 것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찔레는 장미를 낳은 부모이지만 오히려 장미에게 부모의 자리를 내주었다.

장미를 낳은 찔레가 자식인 장미에 속한다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식물분류학자들은 장미가 찔레를 낳은 존재로 파악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는 상식과 동떨어지진 일이 부지기수이고, 때론 부모와 자식 간의 서열도 뒤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중국 전국시대 맹자가 얘기했듯이 ‘불능자(不能者)’와 ‘불위자(不爲者)’가 있다. 불능자는 ‘할 수 없는 것’이고, 불위자는 ‘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에서 불능자와 불위자만 잘 판단할 수 있다면 괜찮은 삶을 꾸릴 수 있다. 간혹 자신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명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식물분류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찔레를 장미과로 분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능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찔레를 생각하면 설렌다. 살면서 설레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설렘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설레는 순간이 줄어들까. 설레는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기대하는 것이 작다는 뜻이다.

왜 나이 들면 기대하는 것이 작을까. 그러나 나이와 기대는 비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기대하는 것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대의 대상 자체가 달라진다.

젊을 때의 기대는 사랑, 친구 등이었지만 나이 들면서 사랑보다는 돈, 친구보다는 가족과 노후 걱정 등으로 기대의 대상이 바뀐다.

나 역시 나이 들면서 사랑과 친구보다 돈과 노후에 관심이 많지만, 사랑의 대상을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 옮기면 기대는 젊을 때 못지않다.

나무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것도 평등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1년 만에 피는 나무의 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아무리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1년 만에 피는 나무의 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무의 꽃은 돈과 권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무는 돈과 권력으로 독점할 수 없다. 설령 돈이 많은 사람들이 정원과 수목원을 갖고 있더라도, 어떤 사람이 큰 규모의 집에서 많은 식물을 키우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문 밖에만 나가면 감당할 수 없는 식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피는 한 그루의 꽃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여전히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내가 오월의 찔레꽃에 설레는 것은 아직도 기대하는 것이 아주 다양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대의 대상일 때, 1년 내내 나이와 관계없이 설렘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설렘은 희망의 씨앗이다. 희망의 씨앗은 삶의 열매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