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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새 싱크대

어머니와 새 싱크대

by 운영자 2014.06.05

친정어머니의 키에 맞춰 나지막하게 새로 설치한 싱크대가 손자국 하나 없이 반짝반짝합니다.오래도록 새 싱크대를 갖고 싶어 하다가 막상 새 싱크대가 생기자 설거지를 딱 한 번 하고는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파옵니다.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친 것도 아닌데 극심한 허리 통증이 와서 응급실로 달려갔고, 결국 노화로 인한 척추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스물 네 시간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계시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87세지만 워낙 건강관리를 잘하셨고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의 세 끼 식사를 모두 손수 끓이셔서 주위에서 다들 부러워했는데, 하루아침에 식사는 물론 용변마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게 되었으니 당사자인 어머니에게도 배우자인 아버지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이런 날벼락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잊을만하면 싱크대를 새로 바꾸고 싶다고 하시고는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말씀을 거둬들이곤 했습니다.

이 나이에 앞으로 쓰면 도대체 얼마나 쓰겠다고 큰돈을 들이냐며 괜한 욕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제 작업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싱크대를 맞추다보니 어머니 생각이 저절로 났고, 언니와 돈을 합해 이참에 친정 싱크대를 바꿔드리기로 했습니다.

공사 소음과 먼지가 만만찮았지만 두 분 모두 새로운 싱크대에 대한 기대로 살짝 흥분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 싱크대를 제대로 한 번 써보지도 못하시다니요.

연세가 많아 언제 퇴원할지 도무지 기약이 없고 퇴원 후에도 절대안정이 필요할 거라고 하니 예전처럼 살림을 하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싱크대를 볼 때마다 아무리 사양하셨더라도 서둘러 진작 새로 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앞으로도 제대로 써보지 못 하실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명랑한 할머니 환자라는 점입니다.

갑작스런 자신의 상태를 비교적 잘 받아들이셨고 치료가 끝난 후 스스로 화장실 출입만 할 수 있어도 큰 성공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거기다가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92세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빈자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쁜 자식들 걱정하지 않게 당신의 끼니를 스스로 챙기겠다고 선언하신 점입니다.

선언만 한 게 아니라 성실하게 실천하고 계신 걸 보니 앞으로 어쩌면 새 싱크대는 아버지 차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발 바라기는 어머니가 새 싱크대를 사용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기만 하셔도 좋으니 얼른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시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