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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회혼(回婚)잔치를 기다리며

부모님의 회혼(回婚)잔치를 기다리며

by 운영자 2014.06.17

저는 지금 이 글을 병원에 계신 어머니 침대 옆에서 쓰고 있습니다.입원한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거의 매일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왔습니다.

60년 세월을 함께해 오면서 이렇게 오래도록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두 분은 금슬 좋은 부부답게 어찌나 하실 말씀이 많은지 오늘도 역시 만나자마자 소곤소곤 머리를 맞대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병원 생활의 지루함을 잠시 잊을 수 있고, 아버지는 긴 시간 홀로 보내야하는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함경남도에서 각기 남쪽으로 내려온 두 분은 피난지에서 우연히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중학교와 유치원의 교사로 일하다가 사랑에 빠졌고,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삼남매를 낳아 기르셨습니다.

온힘을 다해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나니 남은 것이라고는 작은 아파트 한 채 뿐이지만, 그래도 서른둘, 스물일곱에 만나 결혼한 지 60년에 삼남매와 그들의 짝 세 명, 손자 손녀와 또 그들의 짝을 합해 아홉 명, 거기다가 증손자와 증손녀 셋이 태어나 이제 모두 스무 명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멀고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결과입니다.

무뚝뚝하면서도 꼼꼼하고 마음 약한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는 아무래도 천생배필인 듯, 서로에 대한 정이 식을 줄을 몰라 여전히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고 모든 일에 의기투합 일심동체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의 입원 소식을 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홀로 지내야 하는 아버지 걱정을 빼놓지 않습니다.

남자 노인의 끼니 걱정이 아니라 비어있는 아버지의 옆자리가 마음 쓰인다고들 하셨습니다.

부모님과 저희 삼남매는 올 10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부부가 혼인하여 함께 맞는 예순 돌’을 뜻하는 회혼(回婚)이므로,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잔치보다는 무언가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작은 경로잔치를 하기로 일찌감치 뜻을 정해 두었습니다.

잔치 비용으로 어려운 어르신들께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자손들과 그 친구들의 재능을 모아 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대강의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아무쪼록 어머니가 얼른 일어나셔서 회혼례를 겸한 경로잔치 준비를 지켜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으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