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
by 운영자 2014.06.23
시간에 떠밀리는 물살 잠시 가두고 / 단계 연지(硯池) 맑은 물 속 주름진 하루 담아 / 뼈마디 꼿꼿이 세우고 젖은 길 걸어간다 // 마음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 비우는 아픔으로 제 몸 곱게 갈아내어 / 천년의 흔적 새긴다, 묵향 짙은 물소리 - 예연옥, 자향먹(慈香墨) 전문
서예는 3천 년 간 이어온 동양의 예술로 동양의 독특한 필기도구인 붓을 사용하여 먹을 갈아 흰 종이에 문자의 조형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서예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의 시대인 현대에서 느림의 미학 중 하나이다.
서예에 반드시 필요한 ‘문방사우’는 종이, 붓, 먹, 벼루를 뜻한다. 종이는 먹을 잘 흡수하고 먹색을 잘 나타내는 한지를 선택하고, 붓은 곧고 뾰족하며 끝의 길이가 일정한 것을 선택하고 먹은 나무를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서 만든 것으로 입자가 곱고 단단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먹은 소나무(송진), 기타 식물의 기름을 연소시켜 생긴 그을음을 아교로 굳혀 만든 것으로 벼루에 갈아서 탄소의 로이드 용액의 먹물을 만드는 원료와 콜로이드 입자의 성질에 의해 발색(發色)이 미묘하게 변한다. 먹을 다루는 묵법(墨法)을 제대로 사용했을 때 비로소 서예라고 할 수 있다.
먹은 글씨를 쓰는데 필수불가결의 용구로 먹의 좋고 나쁨은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좋은 먹은 붓의 연호든 경호든 관계없이 운필을 매끄럽게 하고 붙거나 껄끄럽거나 막힘이 없게 해 준다. 그래서 역대의 서예가들은 먹의 선택에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먹의 좋고 나쁨을 감별할 때는 먼저 입자가 미세하고 윤기가 있는가를 살핀다. 만져보아서 거친 느낌이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다음으로 먹의 색깔이 자색의 광택을 하고 있는가를 본다. 청색의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최상의 먹은 아니다.
그리고는 먹의 향기로 판별하는데 좋은 먹은 맡으면 향기는 없으나 먹을 갈게 되면 도리어 한 차례의 맑은 향기가 풍긴다. 경미한 사향과 용뇌 냄새가 풍기면 좋은 먹이다.
좋은 먹은 무겁고 나쁜 먹은 가벼우며, 좋은 먹은 두드려 보면 맑은 소리가 나지만 나쁜 먹은 소리가 없다.
큰 글자를 쓸 때는 먹 입자가 좀 굵어도 무방하나 작은 글씨를 쓸 때의 먹은 반드시 미세해야 한다. 특히 화선지에 쓸 때는 먹이 미세해야만 하니 좋은 먹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먹을 갈 때는 물은 잡된 것이 없는 맑은 물을 사용해야 한다. 뜨거운 물이나 차물(茶水)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먹은 빨리 풀리지만 먹의 입자가 굵게 되며, 차물을 사용하면 먹의 광택에 손상을 준다. 먹을 갈 때는 무겁게 눌러서 가볍게 밀어야만 한다. 먹은 반드시 수직으로 세우고서 반드시 한 방향으로 갈아야 한다.
먹색의 농담은 자기가 사용하는 붓과 쓰려고 하는 서체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중국 북송의 문인 소동파는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갈아 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이 먹을 갈 때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 손목처럼 순수하게, 또는 욕심을 내려놓은 칠순 노인의 손목같이 마음을 비운 자세로 먹을 갈아야 한다.
먹은 메마르고 꼿꼿한 몸을 세우고 벼루의 연지에 담긴 맑은 물속에 제 몸을 갈아내는 참으로 힘든 고통의 수행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을 비워낸 후에야 비로소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먹물이 되어 하얀 화선지 여백 위에 묵향 짙은, 천 년의 흔적을 남긴다.
서예는 3천 년 간 이어온 동양의 예술로 동양의 독특한 필기도구인 붓을 사용하여 먹을 갈아 흰 종이에 문자의 조형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서예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의 시대인 현대에서 느림의 미학 중 하나이다.
서예에 반드시 필요한 ‘문방사우’는 종이, 붓, 먹, 벼루를 뜻한다. 종이는 먹을 잘 흡수하고 먹색을 잘 나타내는 한지를 선택하고, 붓은 곧고 뾰족하며 끝의 길이가 일정한 것을 선택하고 먹은 나무를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서 만든 것으로 입자가 곱고 단단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먹은 소나무(송진), 기타 식물의 기름을 연소시켜 생긴 그을음을 아교로 굳혀 만든 것으로 벼루에 갈아서 탄소의 로이드 용액의 먹물을 만드는 원료와 콜로이드 입자의 성질에 의해 발색(發色)이 미묘하게 변한다. 먹을 다루는 묵법(墨法)을 제대로 사용했을 때 비로소 서예라고 할 수 있다.
먹은 글씨를 쓰는데 필수불가결의 용구로 먹의 좋고 나쁨은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좋은 먹은 붓의 연호든 경호든 관계없이 운필을 매끄럽게 하고 붙거나 껄끄럽거나 막힘이 없게 해 준다. 그래서 역대의 서예가들은 먹의 선택에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먹의 좋고 나쁨을 감별할 때는 먼저 입자가 미세하고 윤기가 있는가를 살핀다. 만져보아서 거친 느낌이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다음으로 먹의 색깔이 자색의 광택을 하고 있는가를 본다. 청색의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최상의 먹은 아니다.
그리고는 먹의 향기로 판별하는데 좋은 먹은 맡으면 향기는 없으나 먹을 갈게 되면 도리어 한 차례의 맑은 향기가 풍긴다. 경미한 사향과 용뇌 냄새가 풍기면 좋은 먹이다.
좋은 먹은 무겁고 나쁜 먹은 가벼우며, 좋은 먹은 두드려 보면 맑은 소리가 나지만 나쁜 먹은 소리가 없다.
큰 글자를 쓸 때는 먹 입자가 좀 굵어도 무방하나 작은 글씨를 쓸 때의 먹은 반드시 미세해야 한다. 특히 화선지에 쓸 때는 먹이 미세해야만 하니 좋은 먹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먹을 갈 때는 물은 잡된 것이 없는 맑은 물을 사용해야 한다. 뜨거운 물이나 차물(茶水)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먹은 빨리 풀리지만 먹의 입자가 굵게 되며, 차물을 사용하면 먹의 광택에 손상을 준다. 먹을 갈 때는 무겁게 눌러서 가볍게 밀어야만 한다. 먹은 반드시 수직으로 세우고서 반드시 한 방향으로 갈아야 한다.
먹색의 농담은 자기가 사용하는 붓과 쓰려고 하는 서체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중국 북송의 문인 소동파는 ‘사람이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먹이 사람을 갈아 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이 먹을 갈 때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 손목처럼 순수하게, 또는 욕심을 내려놓은 칠순 노인의 손목같이 마음을 비운 자세로 먹을 갈아야 한다.
먹은 메마르고 꼿꼿한 몸을 세우고 벼루의 연지에 담긴 맑은 물속에 제 몸을 갈아내는 참으로 힘든 고통의 수행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을 비워낸 후에야 비로소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먹물이 되어 하얀 화선지 여백 위에 묵향 짙은, 천 년의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