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점 반
넉점 반
by 운영자 2014.06.25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동시(童詩)만큼 사람의 마음 바탕과 삶의 근원을 노래하는 것도 드물다 싶습니다.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 혹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본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운 낱말이나 생각을 연결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삶을 새롭게, 가장 단순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분이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 ‘넉점 반’을 소개했습니다. 일흔이 되신 분이 오래 전에 해둔 스크랩을 꺼내 소녀 같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읽어주는 ‘넉점 반’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점 반이다.”//“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점 반/ 넉점 반...”/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깍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지금은 어디나 흔한 시계가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마을의 예배당 종소리가 시계 역할을 했습니다. 새벽 첫 종이 울리는 시간은 네시 반, 두 번째 종이 울리는 시간은 다섯 시, 종소리로 시간을 가늠하여 일어나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는 했으니까요.
그런 시절에 한 아기가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가겟집에 가서 몇 시인지 묻고 오라는 심부름입니다.
가겟집을 찾아간 아기가 가겟집 할아버지로부터 ‘넉점 반’(네 시 반)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지요.
하지만 문제는 오는 길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아기가 물먹는 닭을 만납니다. 물먹는 모습이 신기한 아기는 한참 서서 닭 구경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께 들은 시간을 잊을까 넉점 반을 열심히 외우지요. 다시 돌아선 길, 이번에는 길에서 개미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하고, 잠자리를 만나 잠자리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여전히 넉점 반을 되뇌면서요. 잠자리 보내고 돌아오던 아기가 이번에는 분꽃을 보고는 분꽃을 따 나팔을 불듯이 놀이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하루해는 꼴깍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해가 저문 뒤에야 집에 돌아온 아기가 엄마한테 심부름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그 대목에 이르면 엄마한테 시간을 이르는 아기의 모습이 눈에 선해 웃음이 납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열심히 넉점 반을 외운 모습이 기특하다 여겨지기도 하고요.
‘넉점 반’을 들으며 그 내용이 참 재미있어 웃었지만, 은근히 찔리는 구석도 있었습니다.
아기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도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넉점 반만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쉬운 낱말이나 생각을 연결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삶을 새롭게, 가장 단순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분이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 ‘넉점 반’을 소개했습니다. 일흔이 되신 분이 오래 전에 해둔 스크랩을 꺼내 소녀 같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읽어주는 ‘넉점 반’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점 반이다.”//“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점 반/ 넉점 반...”/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깍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지금은 어디나 흔한 시계가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마을의 예배당 종소리가 시계 역할을 했습니다. 새벽 첫 종이 울리는 시간은 네시 반, 두 번째 종이 울리는 시간은 다섯 시, 종소리로 시간을 가늠하여 일어나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는 했으니까요.
그런 시절에 한 아기가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가겟집에 가서 몇 시인지 묻고 오라는 심부름입니다.
가겟집을 찾아간 아기가 가겟집 할아버지로부터 ‘넉점 반’(네 시 반)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지요.
하지만 문제는 오는 길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아기가 물먹는 닭을 만납니다. 물먹는 모습이 신기한 아기는 한참 서서 닭 구경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께 들은 시간을 잊을까 넉점 반을 열심히 외우지요. 다시 돌아선 길, 이번에는 길에서 개미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하고, 잠자리를 만나 잠자리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여전히 넉점 반을 되뇌면서요. 잠자리 보내고 돌아오던 아기가 이번에는 분꽃을 보고는 분꽃을 따 나팔을 불듯이 놀이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하루해는 꼴깍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해가 저문 뒤에야 집에 돌아온 아기가 엄마한테 심부름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그 대목에 이르면 엄마한테 시간을 이르는 아기의 모습이 눈에 선해 웃음이 납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열심히 넉점 반을 외운 모습이 기특하다 여겨지기도 하고요.
‘넉점 반’을 들으며 그 내용이 참 재미있어 웃었지만, 은근히 찔리는 구석도 있었습니다.
아기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도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넉점 반만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