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 당선보다 중요한 것
선량, 당선보다 중요한 것
by 운영자 2014.07.18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지방선거가 얼마 전에 끝났는가 싶더니, 요즘은 국회의원 보궐선거 열기가 한창 뜨겁다.선거 결과는 투표일 저녁에 바로 나오지만, 당락의 여부는 선거기간 동안 입후보자가 어떻게 노력했는가가 관건이다.
선거일자가 정해지면 지역마다 예비후보가 나서서 공천경쟁이 불붙는다. 후보들마다 선거사무실을 열고, 출판기념회를 갖고, 유권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쓴다.
이들 예비후보는 공천심사를 거쳐 단일후보로 결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들린다. 공천을 받은 후보야 쾌재를 부르겠지만 탈락자들은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격하게 항의하다 못해 탈당도 불사한다.
또 어떤 지역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뜻밖의 인물을 내세워가지고 오랫동안 텃밭을 갈아온 입지자를 좌절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치라는 것이 저리도 좋은 것인가?’
선거 때마다 수많은 후보자들이 각축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의문을 갖는다. 어깨띠를 두르고 다니며 악수를 청하고, 명함을 돌리고,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운동원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정치가 무엇이관데 저토록 표를 얻으려고 기를 쓸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입후보자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지역에 대한 헌신과 봉사만을 위해서 선거판에 나서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정치에 나설 때는 나름대로 가슴 속에 개인적인 욕망을 품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게 바로 출세하고 싶고, 권력을 갖고 싶고, 누구를 지배하고 싶고, 명예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구태여 과도한 비용을 들여가며 선거판에 뛰어들겠는가.
선거비용에 관해서도 궁금한 점이 있다.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적잖은 경비가 들어갈 텐데, 솔직히 당선되고 나서 본전 생각이 없을까?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로서 누구나 투자한 만큼 산출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과연 임기 동안 그러한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나 같으면 선거에 나설 돈이라면 은행에 맡겨 놓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선거 결과 당락이 판가름 났을 때 당선자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득의에 찬 표정이다. 물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선거에서 이겼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당원들에 둘러싸여 만세를 부르고 축하화환을 받을 때 하늘을 날 것 같은 흥분과 환희에 몸을 떨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라! 앞으로 그가 앉을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시장이건, 군수건, 국회의원이건, 시의원이건 누구를 막론하고 막중한 책임이 주어지는 지도자의 자리가 아닌가.
그 책임이란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민의 행복한 삶을 도모하는 일이겠는데, 다행히 잘하면 칭송을 듣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만큼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그러한 책무를 생각한다면 당선이 되었다고 마냥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1976)에서 소유의 삶보다 존재의 삶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바꾸어 말하면 인생에서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장이나 군수,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량이 된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국리민복의 막중한 책임을 떠안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당선자는 파안대소만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중차대한 임무와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실종자의 시신을 다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고 당시를 돌이켜볼 때 지금도 땅을 치고 싶은 것은 사고 발생 직후에 배의 운항 책임자가 왜 신속한 구조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기 살길 찾기에 급급하기 전에 선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했더라면 그 엄청난 국가적인 재난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 점을 보더라도 우리가 뽑는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보궐선거에서는 부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참신한 인물이 뽑히기를 기대해본다.
선거일자가 정해지면 지역마다 예비후보가 나서서 공천경쟁이 불붙는다. 후보들마다 선거사무실을 열고, 출판기념회를 갖고, 유권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쓴다.
이들 예비후보는 공천심사를 거쳐 단일후보로 결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들린다. 공천을 받은 후보야 쾌재를 부르겠지만 탈락자들은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격하게 항의하다 못해 탈당도 불사한다.
또 어떤 지역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뜻밖의 인물을 내세워가지고 오랫동안 텃밭을 갈아온 입지자를 좌절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치라는 것이 저리도 좋은 것인가?’
선거 때마다 수많은 후보자들이 각축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의문을 갖는다. 어깨띠를 두르고 다니며 악수를 청하고, 명함을 돌리고,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운동원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정치가 무엇이관데 저토록 표를 얻으려고 기를 쓸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입후보자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지역에 대한 헌신과 봉사만을 위해서 선거판에 나서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정치에 나설 때는 나름대로 가슴 속에 개인적인 욕망을 품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게 바로 출세하고 싶고, 권력을 갖고 싶고, 누구를 지배하고 싶고, 명예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구태여 과도한 비용을 들여가며 선거판에 뛰어들겠는가.
선거비용에 관해서도 궁금한 점이 있다.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적잖은 경비가 들어갈 텐데, 솔직히 당선되고 나서 본전 생각이 없을까?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로서 누구나 투자한 만큼 산출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과연 임기 동안 그러한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나 같으면 선거에 나설 돈이라면 은행에 맡겨 놓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선거 결과 당락이 판가름 났을 때 당선자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득의에 찬 표정이다. 물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선거에서 이겼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당원들에 둘러싸여 만세를 부르고 축하화환을 받을 때 하늘을 날 것 같은 흥분과 환희에 몸을 떨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라! 앞으로 그가 앉을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시장이건, 군수건, 국회의원이건, 시의원이건 누구를 막론하고 막중한 책임이 주어지는 지도자의 자리가 아닌가.
그 책임이란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민의 행복한 삶을 도모하는 일이겠는데, 다행히 잘하면 칭송을 듣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만큼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그러한 책무를 생각한다면 당선이 되었다고 마냥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1976)에서 소유의 삶보다 존재의 삶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바꾸어 말하면 인생에서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장이나 군수,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량이 된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국리민복의 막중한 책임을 떠안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당선자는 파안대소만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중차대한 임무와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실종자의 시신을 다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고 당시를 돌이켜볼 때 지금도 땅을 치고 싶은 것은 사고 발생 직후에 배의 운항 책임자가 왜 신속한 구조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기 살길 찾기에 급급하기 전에 선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했더라면 그 엄청난 국가적인 재난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 점을 보더라도 우리가 뽑는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보궐선거에서는 부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참신한 인물이 뽑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