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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곁에 있어도

아무리 곁에 있어도

by 운영자 2014.08.06

언젠가 ‘사랑 아니면’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아무도 모르지/ 가슴으로 박힌 슬픔의 못/ 실개천으로 흐르는/ 깊고 아픈 출혈/ 누구도 모르지// 아무도 모르지/ 가슴으로 쌓인 설움의 숯/ 연기로만 맴도는/ 맵고 아린 눈물/ 누구도 모르지// 어떻게 꺼낼지/ 어떻게 달랠지/ 아무도 모르지// 가슴으로 박힌 슬픔의 못/ 가슴으로 쌓인 설움의 숯// 누구도 모르지/ 아무리 곁에 있어도/ 사랑 아니면’ 우리가 그런 것 아닐까, 아무리 곁에 있어도 사랑 아니면 가슴에 박힌 슬픔의 못과 가슴에 쌓인 설움의 숯을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법 익숙한 이름 스티븐 코비가 들려주는 어느 일요일 아침 뉴욕의 지하철 안에서 겪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는 몇 안 되는 승객들이 신문을 읽거나 졸고 있었습니다. 코비가 한창 독서에 빠져 있을 때 다음 정거장에서 한 남자가 어린아이 몇 명을 데리고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타자마자 전철 안은 이내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전철 안을 마구 뛰어다녔고, 바닥에서 떠들고 소리치며 씨름판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는데도 아버지는 아이들을 타이르거나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피해 노인 승객들은 불안스레 자리를 옮겼고, 많은 승객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코비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가 나서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진정시켜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상황이 그런데도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를 않았습니다.

마침내 코비가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이들에게 와서 앉으라고 말해주시면 전철 안에 조용해질 것 같습니다.” 그 때 아이들의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어떻게든 하긴 해야겠는데… 우린 지금 막 병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아이들 엄마가 한 시간 전에 세상을 떠났지요.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전철 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아버지를 언짢게 여겼지만, 전철 안에 있는 승객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불쾌하게 만든 가족에게 있었던 큰 슬픔을 짐작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일 누구라도 그 가족이 막 겪은 슬픔을 알았다면 충분히 아이들과 아버지를 이해하며 따뜻하게 위로할 수가 있었을 텐데요.
세월호 참사를 당한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무례하고 난폭한 반응들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일종의 교통사고라 말하는 이가 있더니, 이번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국회 단식농성을 두고 ‘노숙자’란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내 자식이 희생자들 중 하나라면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반응들입니다.

슬픔의 굵은 대못이 가슴 깊이 박힌다 해도, 애간장이 타도록 슬픔의 숯이 가슴에 쌓인다 해도 결국 사랑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곁에 있어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