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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꿈에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by 운영자 2014.09.04

“당신은 잠복을 타고 났어.”잠을 잘 못 자는 아내는 가끔 나의 잠 습관을 부러워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자정을 넘기기 전에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하면 아침 6시에 눈을 뜹니다. 잠 하나만은 깊고 충분하게 잡니다.

그 말고도 아내가 ‘잠복을 타고났다’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꿈입니다. 나는 꿈이 없습니다.

혹 꿈을 꾼다면 일 년에 한두 번쯤 꿈맛을 볼까, 그저 그 정도입니다.

“별 포부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꿈마저 없는 거지 뭐.”

가끔 아내에게 그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꿈이라곤 안 꾸는 내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이라 해도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 있을 텐데, 간밤 꿈은 거두절미하고 딱 한 컷짜리였습니다.

그 한 컷도 배경이 없는 인물만 홀로 등장했는데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홀연 꿈에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흔 일곱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꿈에 본 어머니는 머릿결이 고운 쉰쯤의 모습이었습니다.

흰 저고리에 감물빛 치마를 입으셨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 속 여인 같은 전신 모습입니다. 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반듯한 이마와 곱게 빗은 비녀머리, 똑 바른 눈매, 그리고 오롯이 다무신 입. 정말 그림 속의 정물 같이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오셔서는 따뜻한 물 한 컵 잡수시지 못하고 금방 가셨습니다. 그간 안녕히 잘 계시는지, 이불은 잘 덮고 주무시는지, <박부인뎐>은 요즘도 읽고 계시는지 그런 인사를 드릴 겨를도 없이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쯤. 다시 눈을 붙이려 해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꿈이라곤 안 꾸는 내가 어머니를 이렇게 뵙다니요.

어머니 생각에 거실로 나왔습니다. 이 야심한 밤 건너편 아파트에 불 켜진 집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는 왜 오셨을까? 그 집 또렷한 불빛을 보며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 생각을 너무 안 한 듯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잊지 말라고 한번 찾아오신 게 아니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내가 자식 노릇을 너무 못한 듯합니다.

어머니가 아흔 일곱에 돌아가셨으니, 사실 만큼 사시다 가셨다고 마음을 놓은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연세를 사셨다고 해도 막내인 내가 모신 날은 통틀어 두어 달도 못 됩니다. 그러고도 나는 무슨 염치로 그런 불측한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부끄럽습니다.

지난 추석에는 급박한 일이 있어 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못 했습니다. 아무리 사는 일이 험난하다 해도 자식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벌써 추석이 닷새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올해는 잊지 말고 좀 보자는 어머니의 뜻이 꿈으로 나타난 모양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엔 꼭 성묘를 가 어머니를 뵈어야겠습니다. 어머니! 속으로 어머니를 한번 불러봅니다.

어디선가 오냐! 하는 대답이 들릴 것만 같습니다. 건너편 아파트의 초롱초롱하던 새벽불도 깜물 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