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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게 한 것은

꽃을 피게 한 것은

by 운영자 2014.12.03

겨울철 화로처럼 마음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는 책 중의 하나가 《할아버지의 기도》입니다.책 서문에는 ‘할아버지의 축복’이란 글이 실려 있는데, 거기 담긴 이야기 하나도 그윽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가 네 살배기 손녀에게 선물을 전해줍니다.

종이컵이었는데, 컵 안에 좋은 것이 담겨 있을 줄 알았던 손녀는 실망하고 맙니다. 흙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부모는 늘 흙을 만지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타이르고는 했으니까요.

외할아버지는 소꿉장난감 속에서 찾아낸 찻잔을 들고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가 찻잔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조금 전 전해준 종이컵에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준 종이컵을 손녀의 창가 턱에 올려놓으며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찻잔으로 물을 줄 수 있겠냐고 물으며, 매일같이 물을 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그러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며칠 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으로 물을 주었지만, 아무 변화도 없는 종이컵에 날마다 물을 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따분하게 느껴졌고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두 주가 지났을 때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컵을 돌려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컵을 다시 손녀의 손에 쥐어주며 하루도 물주는 일을 잊지 말 것을 손녀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깜박 잊고 침대에 들었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종이컵에 물을 주려던 손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컵 속의 흙에서 막 움트기 시작한 연두색 싹을 보았던 것입니다.

전날 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컵엔 흙만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밤사이에 파란 싹을 틔웠던 것이지요.

연두색 싹을 본 손녀는 그 사실을 어서 할아버지에게 알려드리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이야기를 하면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할아버지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은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단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도 생명은 숨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손녀가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할아버지, 그럼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게 물이에요?”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을 자라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란다.”

생명을 자라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성실함이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소중하게 와 닿습니다. 매일 물을 주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소용없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싹을 돋게 하는 것은 성실함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성실하게 희망을 물을 주면 마침내 희망의 싹은 돋아나게 될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희망의 싹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