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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 인상

겨울숲 인상

by 운영자 2014.12.08

펄펄 끓는 흰 눈발이 자작나무 숲에 얹혀/ 귀 대이고 부푼 고요 적막의 성을 쌓아/ 거대한 신운의 무게 말문의 벽 허문다// 작은 길 오솔길에 숨어든 작은 짐승 / 새끼들 건사한 채 속삭이는 뜨거운 사랑/ 겨울숲 까마득한 벼랑 뚝뚝 꺾인 실가지 // 바람이 거센 밤은 꿍꿍 산이 울었다/ 눈보라 뿌연 비상 나무 끝에 맺는 흰꽃 / 저 깊은 화엄의 썰물 태어나는 돌부처 - 졸시, 「겨울숲 인상」 전문

11월의 늦가을이 끝나고 12월 겨울이 시작되는 첫날, 서울에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눈이 내렸다. 펄펄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노라니 백석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고향이 북방인 평안도이기도 하지만 겨울에 관한 시를 많이 쓴 때문일까?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란 작품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밤 흰당나귀타고/ 산골로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산골로가 마가리에살쟈//-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부분에서도, 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시도 겨울이 배경이다. 객지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성찰하면서 바람직한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 작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보면 자신을 객관화시켜 놓고 보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 중략 -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부분

백석은 본명이 백기행이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995년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에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여 등단했으며, 그의 첫 시집은 1936년에 간행된 『사슴』으로 33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고향의 풍물, 민속, 인물을 대상으로 주로 시를 썼다. 그는 감정과 정서는 철저하게 절제하여 묘사했다.

또한 그는 평안 방언 외에 다른 지역 언어들도 사용했고, 고어를 살려 쓰거나 말을 새로 만들어 쓰기도 했으며, 사전에서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표준어들을 사용하여, 우리말의 확장에 기여한 공이 큰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의 유명 작품으로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 여승, 팔원, 사슴, 통영, 고향, 백화 등이 있는데, 독자에게도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