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배추 한 포기
겨울 배추 한 포기
by 운영자 2015.01.12
겨울 농촌의 밭은 쓸쓸하다. 배추김장이 끝난 뒤 밭이 텅 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밭 구석에는 김장김치에도 끼지 못한 배추가 몇 포기 듬성듬성 남아 있다. 남은 배추 잎 위에는 서리가 뽀얗게 앉아 있다.낮에 햇살이 비치면 녹지만 새벽에 내린 이슬로 다시 아침에는 뽀얀 서리로 가득하다. 밭에 덩그러니 남은 배추를 보노라면 왠지 가슴이 아프다.
늦은 여름에 뿌린 배추 씨앗이 김장배추로 자라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중에서 김치의 원료로 선택받은 배추는 밭에서 사라지지만, 남은 배추는 선택받지 못했던 것이다.
같이 성장했지만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는 추운 겨울 내내 차가운 이슬을 맞으면서 보내야만 한다. 밭에 남은 배추처럼 세상에는 졸업 후 아직도 취업하지 못한 사람이 아주 많다.
설령 취업했더라도 비정규직이어서 일터에서 매일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
나도 오랜 기간 동안 비정규직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밭에 남은 배추가 지난날의 내 모습을 닮은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걸린다.
새해에 아버지께 문안인사차 고향에 들렀더니 밭에 아직 배추가 남아 있다. 겨울의 언 배추라도 먹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김장김치를 먹느라 밭의 배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봄이 다가올수록 눈길을 주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배추는 얼더라도 어지간하면 먹을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을 좌우하는 김치의 매력도 바로 배추의 특성 때문이다.
김치는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되면서 몇 년 동안에 걸쳐 먹을 수 있다. 집에는 2년 전의 김치도 남아 있다.
배추의 삶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겨울 밭에 남겨진 배추는 추위에 얼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죽어 문드러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봄을 맞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겨울이 춥더라도 견뎌야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추위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주 많다.
특히 겨울은 홀몸노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준다. 올해는 복지예산 부족으로 추위에 고통 받는 계층이 더욱 늘었다.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는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가 바로 중국 전국시대 맹자가 얘기했던 ‘왕도정치’의 핵심이었다.
전국시대에는 집 주변에 뽕나무를 심어서 50살 정도의 백성들에게 비단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물적 토대였다. 당시 50살은 지금과 달리 노인에 해당한다.
노인들은 추위를 견디기가 몹시 어렵다. 그래서 최소한 그들에게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국가 차원의 복지였다.
맹자는 그러한 정치를 인의(仁義) 정치라고 생각했고, 인의 정치를 왕도정치의 골격이라 여겼다.
인의정치는 국가가 백성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책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염치정치’였다.
우리나라에서 배추김치를 담가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전국시대의 왕도정치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밭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배추 한 포기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한 포기라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복지정책의 출발이다.
늦은 여름에 뿌린 배추 씨앗이 김장배추로 자라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중에서 김치의 원료로 선택받은 배추는 밭에서 사라지지만, 남은 배추는 선택받지 못했던 것이다.
같이 성장했지만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는 추운 겨울 내내 차가운 이슬을 맞으면서 보내야만 한다. 밭에 남은 배추처럼 세상에는 졸업 후 아직도 취업하지 못한 사람이 아주 많다.
설령 취업했더라도 비정규직이어서 일터에서 매일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
나도 오랜 기간 동안 비정규직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밭에 남은 배추가 지난날의 내 모습을 닮은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걸린다.
새해에 아버지께 문안인사차 고향에 들렀더니 밭에 아직 배추가 남아 있다. 겨울의 언 배추라도 먹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김장김치를 먹느라 밭의 배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봄이 다가올수록 눈길을 주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배추는 얼더라도 어지간하면 먹을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을 좌우하는 김치의 매력도 바로 배추의 특성 때문이다.
김치는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되면서 몇 년 동안에 걸쳐 먹을 수 있다. 집에는 2년 전의 김치도 남아 있다.
배추의 삶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겨울 밭에 남겨진 배추는 추위에 얼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죽어 문드러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봄을 맞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겨울이 춥더라도 견뎌야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추위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주 많다.
특히 겨울은 홀몸노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준다. 올해는 복지예산 부족으로 추위에 고통 받는 계층이 더욱 늘었다.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전부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는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가 바로 중국 전국시대 맹자가 얘기했던 ‘왕도정치’의 핵심이었다.
전국시대에는 집 주변에 뽕나무를 심어서 50살 정도의 백성들에게 비단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물적 토대였다. 당시 50살은 지금과 달리 노인에 해당한다.
노인들은 추위를 견디기가 몹시 어렵다. 그래서 최소한 그들에게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국가 차원의 복지였다.
맹자는 그러한 정치를 인의(仁義) 정치라고 생각했고, 인의 정치를 왕도정치의 골격이라 여겼다.
인의정치는 국가가 백성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책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염치정치’였다.
우리나라에서 배추김치를 담가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전국시대의 왕도정치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밭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배추 한 포기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한 포기라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복지정책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