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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라 쓰고, 사람들은 무엇이라 읽을까?

나는 무엇이라 쓰고, 사람들은 무엇이라 읽을까?

by 운영자 2015.01.14

누군가의 무덤 앞에 세워두는 돌을 묘비라 부르고, 그 묘비 위에 고인에 대해 글을 새기는 것을 묘비명이라 합니다.화장이 많아진 요즘은 묘비를 세우는 일도 드물게 되었는데, 유럽의 공동묘지를 둘러보면 공원처럼 잘 꾸며진 공간 안에 수많은 묘비명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묘비명에는 고인의 이름과 가족들, 세상에 태어난 날과 떠난 날 등이 기록되는데, 그 외에도 고인의 삶을 돌아볼 만한 글이 적히기도 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고인이 남긴 말을 적기도 하고, 고인의 삶을 기념할 수 있는 말을 적기도 합니다. 묘비명은 꼭 슬픈 내용만 담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뜻밖의 위트와 냉소가 담기기도 합니다.

극작가로써 풍자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적었습니다. 방향과 중심을 잃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경종을 울린다 싶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헤밍웨이는 많은 전쟁에 참전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사냥과 수렵을 즐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을 총으로 자살하여 마감하는데, 그의 묘비에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다 여겨집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으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던 그의 심정이 잘 담겨 있다 싶습니다.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동이 샐지도 몰라.” 일본의 선승 모리야 센얀의 묘비명입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그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쓴 영국의 소설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묘비명은 “별이 총총한 드넓은 하늘 아래 무덤 하나 파고 나를 눕게 하소서.”입니다. 평생 병약한 삶을 살았던 그로서는 무엇보다도 참된 안식을 구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인 조병화는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어머님 심부름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가는 것이라 이해한 시인의 이해가 새롭습니다.

“당신이 오시기 전에는 우리가 어둠 가운데 살았는데, 당신이 가신 후 우리는 빛 가운데 삽니다.”는 아프리카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였던 리빙스턴의 묘비명입니다.

그의 삶을 고마움으로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만약 묘비가 세워진다면 나의 묘비에는 어떤 글이 적힐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읽을까요?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일러주는 것이 묘비명일 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