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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과 숙맥

땅콩과 숙맥

by 운영자 2015.02.09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요즘 일상어 중 하나가 ‘대박’이다. 대박은 ‘IMF 사태’를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일상어로 바뀌었다.이런 현상은 원인도 없이 결과만 기대는 풍토를 반영한다. 요즘 국민의 가계가 무척 어렵다.

여러 분야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쉴 틈 없이 들린다. 자칫 잘못하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이다.

그래서 ‘갑질’에 대한 저항이 만만찮다. 그중에서 아직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땅콩 회항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삶이 힘든 상황에서 생겨서 한층 휘발성이 강하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땅콩’이다.

사건이 땅콩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긴 하지만, 서민들의 먹거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땅콩이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땅콩의 이미지가 엄청나게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콩 회항의 장본인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엄청난 말들을 쏟아 내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땅콩은 말이 없다.

콩과의 한해살이 풀 땅콩은 ‘땅의 콩’이라는 뜻이다. 보통 콩은 가지에서 열매를 얻지만, 땅콩은 감자나 고구마처럼 뿌리에서 열매를 얻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땅콩의 다른 이름은 ‘낙화생(落花生)’이라 부른다.

이는 ‘떨어진 꽃이 산다.’는 뜻이다. 보통 식물의 꽃은 씨방이 변해서 열매를 맺지만, 땅콩은 가루받이가 끝나면 씨방 자루의 밑이 길게 뻗어 나와 땅속을 파고들어 땅속에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땅콩의 이러한 수정방식 때문에 삶의 터전도 모래땅이어야 유리하다. 씨방이 땅속으로 잘 들어가려면 흙이 부드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땅콩의 꽃은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

브라질 원산의 땅콩은 중국에서 ‘호두(胡豆)’라 부른다. 중국의 식물 중에서 ‘호’가 들어가면 수입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바깥세상을 방위에 따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으로 불렀지만, ‘호’는 ‘오랑캐’를 통칭할 때 사용한 단어였다.

그런데 땅콩의 한자는 호두를 의미하는 ‘호도(胡桃)’와 발음이 같아서 혼동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땅콩은 1800∼45년 사이에 중국에서 수입했다.

콩을 의미하는 한자는 ‘두’와 ‘숙(菽)’이다. 지금은 대부분 ‘두’를 사용한다. ‘숙’은 ‘숙맥(菽麥)’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한다.
두는 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제기(祭器)’를 의미한다. 제사 지낼 때 음식을 담는 그릇과 닮았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등장하는 두 자의 처음 뜻도 제기였다. 두과 숙은 콩 중에서도 대두(大豆)를 의미했다.

숙은 풋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좀 낯선 한자이다.

그러나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유래한 숙맥을 상기하면 훨씬 익숙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진(晋)나라 혜제(惠帝)는 콩과 보리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황제였다.

그래서 생긴 숙맥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유명한 고사성어로 남았다.

숙맥에서 보듯이 세상에는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땅콩 회항 사건도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