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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행복

일상의 소소한 행복

by 운영자 2015.02.13

행복을 거창하게 여길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거대한 행복 담론에 묻히거나 파랑새 같은 행복을 꿈꾸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기 쉽다.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신문 읽기와 텔레비전 시청을 통해서도 가슴 찡한 감동과 물무늬처럼 번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양질의 기사와 저질 기사를 가리는 요령이 필요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치판단을 오도하거나 이념에 편향되어 갈등을 부추기는 논평기사는 외면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종편방송을 기러기처럼 기웃거리며 쏟아내는 말의 공해만 피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기쁜 소식은 의미를 되새기고 나쁜 소식은 제목만 훑고 지나친다.

미담 기사는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고, 휴먼스토리는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올 들어 가장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 기사는 의정부 화재 현장에서 10여 명을 구하고도 거액의 성금을 사양한 ‘밧줄 의인’ 인터뷰다.

어느 독지가가 내놓은 성금 3000만 원을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라며 사양했다. 건물에 간판 다는 일을 하는 그에게 적은 돈은 아니다.

“땀 흘려 번 돈이라야 달콤하다.”는 말도 달콤한 명언이다. 앞에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을 비판하고 뒤로 검은돈을 챙긴 시민운동가는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다’ 줄임말)뉴스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단체 간부가 정치권을 기웃대면서 시민단체 파워를 앞세워 돈을 뜯어냈으니 파렴치하다.

배려도 행복 뉴스의 잣대다. ‘크림빵 아빠’의 아내에게 희망을 준 서원대의 배려는 따뜻하다. 임신한 몸으로 졸지에 남편을 잃고 실의에 빠진 그녀를 박물관 행정직 직원으로 특별 채용했다니 흐뭇하다.

업무를 보면서 임용 고시 준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한 이중의 배려도 돋보인다.

강남의 한 아파트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는 약자에 대한 배려의 실종이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중학교에 보금자리주택 자녀들이 배정되자 취소해 달라며 항의 집회를 열었다.

“학급당 학생 수가 늘어 교육 여건이 악화된다”는 주장이지만 실은 보금자리 주택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면 학교 평판이 안 좋아지고 집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다.

내 자식 내 재산만 소중하고 남의 자식은 업신여기는 이기적 작태가 한심하다. 기분 잡치는 서글픈 뉴스다. 사설이나 논평기사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NIE(신문을 활용한 교육)강의를 할 때 아이들에게도 주문한다. 같은 주제에 주장이 다른 두 사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나의 주장을 정리하면 토론에 도움이 되고 창의력과 비판력이 늘어난다고.

시에 해설을 곁들인 ‘행복한 시 읽기’ ‘시가 있는 아침’ ‘가슴으로 읽는 시’는 녹 쓴 감성에 풋풋한 향기와 싱그러운 감성을 불어넣어 준다.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는 갈수록 굳어져 가는 유머 감각의 자극제다.

‘여행 기사’도 꼼꼼히 챙겨 읽는 편이다. 발로 쓴 기사라 생동감이 넘치고 문장도 유려하다. 안방에서 편안하게 세계의 명소를 둘러보는 ‘세계테마기행’은 ‘광팬’(광적인 팬)이다.

영화 연극 도서 리뷰도 흥미를 끄는 정보다. 세상 사는 이야기 속에 소소한 행복을 만날 수 있으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