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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와 마시는 온천수

고로쇠와 마시는 온천수

by 운영자 2015.02.23

물오른 봄, 남녘엔 고로쇠 수액 채취가 한창이다. 고로쇠는 뼈에 이롭다 하여 ‘골리수(骨利水)’라 했으며 신라 화랑이 물 대신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니 역사가 오래됐다.15년 전 지리산 달궁마을에 취재차 들러 밤 이슥하도록 고로쇠 수액을 마시던 기억이 새롭다. 해발 600m 고지대에 고로쇠나무가 분포해 있어 물맛이 신선하다.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오징어를 어금니가 얼얼하도록 씹었다. 고로쇠 수액이 짭짤한 소득원이 됐지만 이른 봄 반짝 등장했다 사라진다.

지난해 이맘때 들린 체코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는 마시는 온천수로 일 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카를로비 바리는 ‘카를 왕의 온천’이란 뜻. 카를 4세가 사냥을 왔다가 온천을 발견한 뒤 휴양지로 개발됐다.

16세기 무렵에는 온천 건물 콜로나다(Kolonada)가 즐비할 정도로 번성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는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쯤 되는 것 같다.

프라하를 유럽 문화의 중심과 제국의 정치적 구심점으로 끌어올려 ‘프라하의 황금기’를 구가한 인물이다. 카를로비 바리에는 각국의 왕족과 귀족, 저명인사들이 요양을 위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악성 베토벤과 모차르트, 대문호 톨스토이, 괴테도 이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도 프라하를 빼고 지방도시에 유일하게 비행장이 있는 것만 봐도 온천 마을이 얼마나 유명하고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고로쇠는 산에서 수액을 채취하지만 카를로비 바리 온천수는 공짜다. 작은 주전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 컵을 들고 다니며 마시면 된다. 종류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예쁘다.

기념품 매점에서 우리 돈 7,000원 짜리를 사서 온천수 마시기 순례에 나섰다. 사도바 콜로나다는 입구에 아기 동상이 있어 성당인 줄 착각했다. 뒤쪽 청색 돔 건물 안에 온천수가 뱀 조형의 입을 통해 졸졸 나온다.

이른 시간 노부부가 온천수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굿모닝” 인사를 건네자 “도브리덴” 체코어로 반긴다. 만난 김에 인증샷까지 날렸다.

믈리스카 콜로나다는 신전처럼 웅장하다. 19세기 말에 지었다는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100개의 원기둥이 길게 늘어선 회랑이다. 회랑 안에 4개의 온천수가 나온다.

차게 마시는 고로쇠 수액은 미네랄과 칼슘, 칼륨 등이 풍부하며 달착지근하지만, 온천수는 탄산·유황·식염 등이 함유돼 있으며 짠맛, 비릿한 맛, 쇠 맛 등 맛과 온도가 제각각이다.

온천수를 많이 마시려면 오징어 대신 슈퍼 와플이 유명하다. 어른 얼굴보다 크고 둥근 와플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에는 바닐라와 초코, 크림이 들어 있어 물을 켜기 좋다.

맞은 켠 브리지델네이 콜로나다는 유리 벽 실내로 섭씨 70도가 넘는 온천수가 10m 높이로 솟구쳐 장관이다. 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양쪽으로 이어진 파스텔톤의 건물은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호텔과 레스토랑, 고가 브랜드 명품과 보석을 파는 숍이 즐비하지만, 겨울이라 한산하다. 온천치료를 위해 장기간 머무는 투숙객들과 매월 7월에 열리는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참가자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느릿느릿 산책하다 목마르면 갈증을 풀 수 있으니 힐링 온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