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보다 준 것을 소중히 하는 것
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보다 준 것을 소중히 하는 것
by 운영자 2015.02.24
어느 여론조사에서 각 나라별로 국민의 행복지수를 매년 조사한다. 경제적으로 국민소득이 높고 복지시설이 잘 된 나라가 행복할 것 같고, 경제적으로 빈곤층 나라사람들이 불행할 것 같지만, 여론조사는 예상 이외의 결과가 나왔다.행복지수가 1위인 국가는 방글라데시아였고, 2·3위도 아시아 빈민국가들이었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거의 꼴찌수준이다.
반면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인 유럽이나 미국이 차지했다. 어느 독일 유학생에게 들은 이야기다. 독일이나 유럽에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데도, 노인네들은 외로워하고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특유한 직업이나 성직자들이 하는 일이 외로운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삶에서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도 삶의 행복을 위한 것이요,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것도 행복이 목적이다.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룬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이다.
아마도 우리는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욕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방인 도메>라는 이란 영화에서 아프카니스탄 사람인 ‘도메’가 이란으로 와서 노동자생활을 한다. 그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주인공 도메에게 이런 말을 한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 돈 벌 목적으로 이 나라에 왔느냐?, 아프카니스탄 젊은이들은 돈을 벌고자 이란에 오고, 이란 젊은이들은 일본으로 돈 벌러 가고, 일본 젊은이들은 미국으로 돈 벌러 간다.”
이 대화 속에서 엿볼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현 자신의 삶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쫓고 있는 외로운 방랑자임을 알 수 있다.
동물은 먹는 것을 비축하지 않고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필요 이외의 생명은 빼앗지 않는 게 동물세계라고 한다.
인간만이 재산에, 명예에 목적을 두고 끊임없이 집착을 한다. 솔직히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임무만 충실히 했어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예를 누리건만, 그 명예에 만족치 못하고 재산을 탐하니, 결국 역사에 오명을 남긴 꼴이다.
그래서 불교 진리에서는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는 탐욕을 부리는 자에게 ‘먹을 것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는 뼈다귀를 쫓는 개’, ‘불빛에 들어가면 제 죽는 줄 알면서 불빛을 탐하는 불나방’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삶을 일구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욕망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그 욕망과 의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오래전 읽은 류시화씨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인도 캘커타 시내에서 둥근 저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달아주고 1루피(30원)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에게 작가가 ‘인생이 행복하냐?’고 질문하자, 이런 답을 하였다.
“행복의 양과 불행의 양은 같은 겁니다. 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보다 준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신은 내게 벌어먹고 살 저울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난 얼마나 행운입니까? 신이 이 저울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 식구는 굶어 죽었을 겁니다.”
반면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인 유럽이나 미국이 차지했다. 어느 독일 유학생에게 들은 이야기다. 독일이나 유럽에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데도, 노인네들은 외로워하고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특유한 직업이나 성직자들이 하는 일이 외로운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삶에서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도 삶의 행복을 위한 것이요,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것도 행복이 목적이다.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룬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이다.
아마도 우리는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욕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방인 도메>라는 이란 영화에서 아프카니스탄 사람인 ‘도메’가 이란으로 와서 노동자생활을 한다. 그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주인공 도메에게 이런 말을 한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 돈 벌 목적으로 이 나라에 왔느냐?, 아프카니스탄 젊은이들은 돈을 벌고자 이란에 오고, 이란 젊은이들은 일본으로 돈 벌러 가고, 일본 젊은이들은 미국으로 돈 벌러 간다.”
이 대화 속에서 엿볼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현 자신의 삶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쫓고 있는 외로운 방랑자임을 알 수 있다.
동물은 먹는 것을 비축하지 않고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필요 이외의 생명은 빼앗지 않는 게 동물세계라고 한다.
인간만이 재산에, 명예에 목적을 두고 끊임없이 집착을 한다. 솔직히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임무만 충실히 했어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예를 누리건만, 그 명예에 만족치 못하고 재산을 탐하니, 결국 역사에 오명을 남긴 꼴이다.
그래서 불교 진리에서는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는 탐욕을 부리는 자에게 ‘먹을 것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는 뼈다귀를 쫓는 개’, ‘불빛에 들어가면 제 죽는 줄 알면서 불빛을 탐하는 불나방’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삶을 일구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욕망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그 욕망과 의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오래전 읽은 류시화씨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인도 캘커타 시내에서 둥근 저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달아주고 1루피(30원)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에게 작가가 ‘인생이 행복하냐?’고 질문하자, 이런 답을 하였다.
“행복의 양과 불행의 양은 같은 겁니다. 신이 내게 주지 않은 것보다 준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지요. 신은 내게 벌어먹고 살 저울을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난 얼마나 행운입니까? 신이 이 저울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 식구는 굶어 죽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