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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커피집

길모퉁이 커피집

by 운영자 2015.03.05

봄 느낌이 나는 아침이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 못미처 은행나무 가로수 밑에 작은 접이식 칠판이 서 있다. 거기 칠판에 쓰여 있는 붉은색 분필 글씨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봄, 너는 어디쯤이니?”

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그만 멈추어 섰다. 누군가가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퇴원하기를 기다리는 내 심정 같았다.

근데 그 화법이 독특했다. 마치 엊그제까지 봄과 통화를 주고받은 듯한 화법이다. 요기 길모퉁이 ‘서대리 커피집’ 영업용 칠판이다.

나는 가끔 그 커피집 앞을 지나치곤 했다. 그때마다 그 커피집이란 것이 얼마나 작은지 누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나 했다.

새끼손톱만 했다. 고양이 이마 쪽이 작다지만 그것보다 훨씬 작았다.

한길에서 골목길로 꺾어드는 모퉁이에 페인트가게가 있는데 그 가게 쪼꼬마한 귀퉁이가 그 집이다.

창구멍만 하나 달랑 뚫려있는 옛날의 담뱃가게, 딱 그만하다. 커피는 어디서 마시나? 나는 모른다. 마시는 이들을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도 길에서 한 뼘 정도 들어간 처마 밑 자리가 그 자리일 거 같았다. 거기에 엉덩이만 간신히 올려놓을 나무의자 하나가 놓여 있곤 했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쑥쑥 들어서는 이 도시에서 요만한 커피집이라니. 그 가게 주인이 서대리인 모양이었다.

왜 하필이면 대리일까. 부장도 과장도 아닌. 그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침 달려와 멈추는 버스에 올랐다.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잔심부름이다. 냉장고 물을 꺼내 달라거나 약을 달라거나 할 때 그 일을 도와주는 일, 그것도 아니면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주는 일이다.

근데 병실에 들어서니 아내의 머리맡에 꽂아둔 프리지아가 없어졌다. 꽃병도.

“환자에게 꽃은 안 된다며 가져갔어.”

아내 말을 듣는 순간, 병원이 아내의 봄을 빼앗아간 느낌이 들었다. 꽃을 보면 아내도 봄을 기다릴 테고, 거기에 맞추어 얼른 일어나야겠다는 마음도 들 텐데……. 병원은 그런 봄 따위엔 관심이 없고, 주로 비용을 많이 들여서 얻어내는 데이터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오후에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집 가까이 올수록 봄을 기다리고 있는 그 서대리 커피집이 생각났다. 버스에서 내리자, 내 걸음이 그 커피집을 향했다.

그 집 쪼꼬만 창문 앞에 섰다. 창문 위에 ‘커피 한잔 생각 하나’라는 푸른색 물감 글씨가 나를 맞는다.

나는 허리를 숙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이윽고 불 켜진 창문 안에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봄을 받쳐 들듯 커피를 받아들고 나무 의자에 앉았다. 커피에서 봄이 모락모락 핀다.

봄은 먼 데가 아닌 가까이 있었다. 불 켜진 창문 안에 있는 그 서대리란 분이 봄이었다. 그이가 그 작은 방에서 봄을 제조하고 있었다.

내가 커피를 주문하려고 고개를 숙여 창문 안을 들여다볼 때 그 안에서 내다보던 눈빛 반짝임, 어쩌면 그게 그분의 봄 같았다.

봄 한 잔을 마시고, 그 길모퉁이 커피집에서 일어났다. 봄이 내 몸에 감염된 모양이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내가 퇴원하면 이 길모퉁이 커피집에 함께 와 ‘빼앗긴 봄’을 충전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