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내의 풍금

아내의 풍금

by 운영자 2015.03.12

풍금을 받으러 방금 안성에 내려왔다.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온 아내가 지난 2월 퇴직을 했다.퇴직하고도 학교에 두고 온 아내의 낡은 재물이 있다.

풍금이다. 아내가 풍금을 사서 음악 수업을 해온 지는 오래됐다. 그러니까 학교가 인터넷의 디지털 음원으로 수업하면서부터다. 어쿠스틱한 악기를 사랑해온 아내에게 있어 디지털 음원은 아무리 편리하다 하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점점 거칠어지는 이유가 교실에서 풍금이 사라지기 때문일지 몰라.”
아내는 늘 그 말을 했었다.

나도 언젠가 초등학교 교실에 가 보고 놀랐다. 어느 교실이나 창가에 늘 있는, 풍금이 있던 자리가 모두 비어 있었다.

대신 교실 앞 천정에 디스플레이 패널이 하나씩 달려있었다. 풍금은 그때부터 교실에서 사라졌고, 어쩌면 아이들은 그때부터 점점 거칠어졌다.

어떻든 아내가 전근을 갈 때면 아내의 풍금도 아내의 기타도 용달차에 실려 아내를 따라 낯선 학교로 갔다. 거기서도 아내는 디지털 음원 대신 풍금으로 음악수업을 했다.

눈 내리던 지지난해 2월, 여의도에 있는 모 초등학교로 아내가 전근을 갔을 때다. 그때에도 나는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아내의 교실 창가에 풍금을 놓아주고 돌아왔었다.

오늘 아내는 그 풍금을 안성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퇴직한 학교로 갔다. 운반비가 좀 들더라도 안성에 내려놓기로 했다. 오랫동안 아내의 손때가 묻은 풍금을 아무렇게나 처분하고 싶지 않았다.

풍금엔 아내의 아이들을 아끼며 살아온 인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내려오는 대로 방 청소를 하고, 풍금이 놓일 자리를 정리했다. 안성은 내가 혼자 내려와 사나흘, 또는 닷새씩 머물다 가는 곳이다. 일하다가 힘에 지치거나, 때로 잠이 오지 않아 적적한 밤에 풍금을 켜며 풍금을 내 동무로 삼을 생각이다.

서울서 2시에 출발한 용달 트럭은 약속한 대로 1시간 20분 만에 도착했다. 용달차 기사는 풍금을 거실에 놓아주고는 이내 떠나갔다. 나는 풍금을 말끔히 닦았다.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오랫동안 교실에서 살아오느라 모서리가 닳고, 껍질이 벗겨지고, 뚜껑에 난 흠집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풍금 잘 닦아놓고 나니 허술하던 집이 달라 보인다.

의자를 당겨 풍금 앞에 앉았다. 풍금 너머에 음악책을 세워 들고 앉아 노래 부르기를 기다리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보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풍금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건반 위에 양손을 얹었다.

아! 리드를 울리며 내 손에서 울려 나는 이 풍금 소리.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바람의 색깔이다. 소리의 향기가 깊고 부드러운 어쿠스틱 악기의 맛이 살아났다.

아내는 이 풍금으로 아내의 교실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어 주었겠다. 페달을 놓고, 풍금을 어루만져 본다. 아내의 체온이, 아내의 인생이 조용히 느껴지는 듯하다.

아내에게 풍금을 무사히 받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나는 이 풍금 앞을 떠나지 못하겠다. 서투르나마 풍금을 켜며 풍금과 함께 밤을 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