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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부(女丈夫) 메르켈과 졸장부(拙丈夫) 아베

여장부(女丈夫) 메르켈과 졸장부(拙丈夫) 아베

by 운영자 2015.03.16

국어사전에 보면 여장부는 명사로 ‘남자처럼 헌걸차고 기개가 있는 여자’ 여걸이라 했고, 졸장부는 명사로 ‘국량이 좁고 졸렬한 남자, 명랑하지 못하고 용렬한 남자’라 돼있다.이런 표현에 적합한 글로벌 리더 두 사람이 여장부 메르켈 총리와 졸장부 아베 총리다.

메르켈은 2005년 취임 후 10년 동안에 독일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끌어 올렸다. 그는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을 폐허로 만든 전범국인 독일의 철저한 반성을 기조로 인접국들과의 관계에 전혀 마찰을 빚지 않고, 독일 정치권의 끊임없는 과거사 반성의 중심에 섰다.

메르켈은 올해 초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연설에서 “나치 만행을 기억하는 건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녀는 또한 야당 당수 시절부터 과거사에 단호한 입장으로, 2003년 같은 기민당(CDU) 소속 마르틴 호만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유대인도 가해자”라고 하자 “과거사를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와 주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단호히 제명한 여장부로 유럽을 넘어 세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반면에 일본 아베는 2006년 만 52세로 전후 최연소 총리로 1차 집권했다. 당시 그는 전임자 고이즈미 총리에 비해 한국과 중국에 열린 태도를 보이며, 전임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냉각된 관계를 복원하겠다면서 집권 한 달 만에 중국과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릇된 역사인식의 문제점만은 고치질 못했다.

그는 2006년 10월 중의원에서 “위안부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으며 2007년 3월엔 “위안부는 거짓말”이라 하며, 집권 1년 만에 무너졌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는 전보다 더 강성노선을 가며 “지난번 총리시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해 한스럽다”했고 2014년 1월 UN고문방지위원회가 ‘일본정부는 위안부를 부정하고, 위안부 출신여성을 음해하려고 시도한 데 대해 반론하라’고 권고하자 “UN권고는 사실을 오인한 일방적인 것이며,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아베는 2013년 5월 미국 언론과 2014년 4월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계속된 망언으로 졸장부의 위치를 굳혀서, 드디어 도쿄대학의 기미아다다시(木宮正史)교수로 하여금 “폭 넓은 의미에서 강제동원이 이뤄졌고,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란 심판을 받았다.

또 주변국들의 골칫거리는 물론 자국 최고대학 교수로부터 역사부정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졸장부의 소행임을 증명받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