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군자란의 꽃과 미역국

군자란의 꽃과 미역국

by 운영자 2015.03.23

꽃피는 계절이다. 내가 사는 곳에 매화와 산수유 등이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겨우내 건조했던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그러나 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전부터 집안 베란다의 군자란은 꽃을 피워 나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렸다.

해마다 쉬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군자란은 소인 같은 나를 군자처럼 키우는 스승이다. 올해 나는 군자란이 꽃을 피우자 아내에게 미역국을 준비하자고 권했다.

지금까지 식물의 꽃을 보면서도 식물이 꽃을 피우는데 얼마나 힘들까를 나의 일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힘들겠지.' 생각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니 식물의 삶이 인간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다.

군자란이 꽃을 피우는 것은 열매를 맺는 중요한 과정이다. 인간이 자식을 낳기 위해서 임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만 임신보다 낳는 과정이 더욱 힘든 것처럼 식물도 열매를 맺는 것보다 꽃을 피우는 것이 훨씬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군자란이 꽃을 피우자 미역국을 준비하자고 했다. 미역국을 끓여 군자란 앞에 둔다고 해서 군자란이 미역국을 먹을 리 없겠지만, 결국 미역국은 군자란에 대한 나의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추기지심(推己之心)', 즉 자신의 마음을 미루는 것이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상대방의 마음은 결코 완벽하게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읽기 어렵다.

내가 군자란이 꽃을 피우자 미역국을 대령한 것은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미역국을 먹는 풍속을 모방한 것이지만, '군자란'은 이미 식물을 사람과 같은 인격체로 인식한 대표적인 식물이라 나의 행동이 완전히 엉뚱한 것은 아니다.

식물 중 군자로 여긴 것은 매화와 대나무와 국화도 있지만, 난초 중에서도 군자란은 이름조차 '군자'이니, 어찌 사람처럼 대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자란은 난초 종류 중에서도 잎이 아주 크고 두터워서 난초 중에서도 '장군'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난초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난초보다도 키우는 데 크게 어렵지 않다. 나는 난초 종류 중 군자란 외에는 키우지 않는다.

식물을 집안에서 키우는 것을 크게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집 안에 많은 식물을 키우지 않는 것은 게으른 탓도 있지만, 키우다가 생명체를 죽일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실에도 식물을 키우지 않는다. 방학 때 연구실에 없으면 죽을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군자란 같은 식물에 대한 사랑은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사랑 방정식은 곧 자신에 대한 사랑 방정식과 비례한다. 사랑은 대상자의 마음을 맞추는 과정이다. 물론 대상자의 마음을 온전히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식물도 인간의 삶처럼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군자란이 꽃을 피우는 것은 삶의 중요한 과정이다. 과정에 대한 예의가 곧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마음은 마음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더욱 빛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오늘따라 군자란의 향기가 더욱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