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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사천이 어디에요?

완사천이 어디에요?

by 운영자 2015.04.24

몇 해 전 어느 도시에서 아주 기분이 상한 적이 있다. 시민들이 자기 고장의 유적을 그렇게도 모를 수가 있느냐는 실망감 때문이었다.그 날은 아내와 함께 지인의 문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차를 멈추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신호등 아래 도로 표지판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완사천(浣紗泉)’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여기에 왔다가 한 아가씨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을 한 바가지 얻어 마시고 나중에 왕비로 삼은 내력이 있는 샘터! 오래 전부터 한 번 가봤으면 하고 벼르던 곳이었다.

‘옳지! 오늘 저기를 들러볼까?’

표지판의 화살표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니 시청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청사 마당에 이르러보니 더 이상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화살표가 이쪽 방향이었는데?’

교통경찰이 있으면 물어보겠는데, 경찰은커녕 행인마저 눈에 띄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볼까?’

사람들을 찾아 시청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식당이나 가게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아버렸는데, 다행히 문을 연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 완사천이 어디에요?”

주인여자가 멀뚱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이었다. 시청 가까이 사는 사람이 주위 사정에 이리도 어두운가 싶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차를 몰고 가다 운동복 차림의 젊은이를 만났다. 스무 살 남짓 대학생 쯤 되어 보였다. 저 친구는 알고 있겠지. 차창을 내리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완사천요? 완사천이 뭔데요?”

기가 막혔다.

“아니, 거 있잖아요. 옛날에 태조 왕건이 물 얻어 마신 샘 말이오. 여기 어디 있다고 하던데….”

“글쎄요?”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이 태어나서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 친구야! 대학생이 되어가지고 자기 동네에 있는 유적지도 모르나?’

괘씸한 생각에 이렇게 내쏘고 싶었으나 꾹 참고 차창을 내렸다.

조금 더 찾아보려고 길을 따라가니 건축 공사장이 나왔다. 인부들 몇이서 건물을 짓는 중이었다. 완사천이 어디냐고 물으니 한 분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보시오!”

그곳은 시청의 반대방향이었다. 나는 미심쩍어서 정확한 지점을 물었다.

“그리 가다보면 주유소가 하나 있어요. 거기 가면 보일 거요!”

자신 있게 말하는 품으로 보아 이제야 찾게 되나보다 싶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았다.

과연 조금 가니 주유소가 나왔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상가와 주택가만 늘어서 있을 뿐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유소에 물어보니 그런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청 쪽으로 가보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울컥 화가 치솟고 말았다.

도대체 누구 약을 올리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다니! 이제는 완사천이고 뭐고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았다. 내 두 번 다시 이곳에 오나봐라! 이렇게 자기 고장의 유적에 무지한 사람들은 처음 봤다고 투덜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그 곳을 다시 지나갈 기회가 생겼다. 그 때는 동행하는 이의 안내로 쉽게 완사천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시청 인근 잔디밭 가운데 있었다.

이렇게 코앞에 있는 것을 모르고 그 때 엉뚱한 곳을 헤매고 다녔구나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리 가까운 유적을 지역민들이 전혀 모르고 지낸다는 사실이 한심스러웠다.

그만큼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순천의 문화유적은 어떤가? 외지 탐방객이 찾아와 물었을 때 우리 시민들이 얼마나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을까. 혹시 나처럼 묻고 다니다가 화를 내고 그냥 떠나버리는 탐방객은 없을까.

그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화유적 안내판과 도로 표지판이 잘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 모두가 우리 고장의 문화유적을 안내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갖춰야 할 것이다. 내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하는 노력, 그것이 바로 향토 사랑의 출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