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의 교훈
청개구리의 교훈
by 운영자 2015.04.09
옛날에 청개구리 가정이 하나 있었다. 그 가정도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산뜻한 초록색의 ‘새 가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새 가정이 언제부터인가 문제가 생겼다.그 가정의 이야기에 아비 청개구리가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어떤 바람기 있는 마담 청개구리와 툭 튀어 나온 눈이 서로 맞아 가출해 버린 것으로 짐작된다.
아비 없이 자라서 인지 새끼 청개구리들은 도무지 홀로된 어미 청개구리의 말을 잘 듣지 않은 것이었다. 거기다가 나중에는 아예 시킨 것과는 정반대(正反對)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강(江)으로 가라면 산(山)으로 가고, 옆집에 잔심부름을 시켜 놓으면 친구의 팔이나 부러뜨리고 오고, 친구들과 놀다가 장독이나 깨뜨리고, 공부하라면 PC나 게임이나 하고 있고……. 너무나 속이 상한 어미 청개구리는 결국 신경성 위궤양을 앓아 눕게 되고 마침내 임종(臨終)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식들의 버릇을 아는지라 어미는 죽거든 자기의 시체를 강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遺言)을 했다. 물론 산에 묻어 달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비뚤어진 새끼 청개구리들은 어미의 죽음을 보고서야 뉘우치고 대오각성(大悟覺醒) 회개(悔改)하여 그의 유언대로 강가에 묻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비가 온다는 기상대의 예보가 있으면 어미의 묘(墓)가 강에 떠내려갈세라 청개구리들은 슬피 울부짖는다는 것이다. 좀 우습게 각색(脚色)한 이 이야기는 사실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 이유는 어미 청개구리의 괴로운 일생, 그의 죽음, 새끼 청개구리들의 돌이킬 수 없는 후회 그리고 가정교육에 대한 비극적인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부모를 잘 봉양(奉養)하고 섬겨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교훈이 듬뿍 담겨 있는 내용이다.
한편 여기에는 새끼들의 잘못만 많이 부각(浮刻)되어 있는 반면 어미의 잘못은 전혀 의식되지 않고 있는 데서 우리의 권위주의 요소가 나타나 있다. 새끼들의 잘못에는 어미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청개구리의 비극은 한국의 사회와 교육, 정부의 비극이기도 하다. 모든 잘못은 피교육자, 국민들, 젊은 세대에만 있고, 교육자, 정부, 기성세대의 책임은 의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메커니즘(mechanism)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너무나 근시안적이요 실리 위주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가져다주는 비극이다.
국민의 정서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임기응변의 정책을 쓰다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 정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이다.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기본 원칙과 일관성의 결여(缺如)로 말미암아 생기는 불신은 우리 가정, 직장,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에 이르기까지 더욱 악화된다.
불신은 인간관계의 암(癌)적 존재이다. 한번 생겨 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치유하기 어려워져 버린다.
지금 우리의 가정과 사회, 정부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성함보다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신뢰의 회복이다. 기본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서 미래를 예측(豫測)할 수 있는 확고한 표준이 설정되어 그 기본 질서와 표준이 철저히 존중되고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선진국의 대열(隊列)에 낄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에 이런 풍토를 심을 수 있는 존경받는 지식인과 정치인, 사업가, 학자들이 많이 필요할 때다.
요즘 농약 살포가 많아지고 도시화로 인한 전답이 줄어 들어 청개구리 소리를 자주 들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지금 우리는 때가 되면 계속 울부짖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새끼 청개구리의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아야 할 텐데…….
아비 없이 자라서 인지 새끼 청개구리들은 도무지 홀로된 어미 청개구리의 말을 잘 듣지 않은 것이었다. 거기다가 나중에는 아예 시킨 것과는 정반대(正反對)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강(江)으로 가라면 산(山)으로 가고, 옆집에 잔심부름을 시켜 놓으면 친구의 팔이나 부러뜨리고 오고, 친구들과 놀다가 장독이나 깨뜨리고, 공부하라면 PC나 게임이나 하고 있고……. 너무나 속이 상한 어미 청개구리는 결국 신경성 위궤양을 앓아 눕게 되고 마침내 임종(臨終)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식들의 버릇을 아는지라 어미는 죽거든 자기의 시체를 강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遺言)을 했다. 물론 산에 묻어 달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비뚤어진 새끼 청개구리들은 어미의 죽음을 보고서야 뉘우치고 대오각성(大悟覺醒) 회개(悔改)하여 그의 유언대로 강가에 묻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비가 온다는 기상대의 예보가 있으면 어미의 묘(墓)가 강에 떠내려갈세라 청개구리들은 슬피 울부짖는다는 것이다. 좀 우습게 각색(脚色)한 이 이야기는 사실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 이유는 어미 청개구리의 괴로운 일생, 그의 죽음, 새끼 청개구리들의 돌이킬 수 없는 후회 그리고 가정교육에 대한 비극적인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부모를 잘 봉양(奉養)하고 섬겨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교훈이 듬뿍 담겨 있는 내용이다.
한편 여기에는 새끼들의 잘못만 많이 부각(浮刻)되어 있는 반면 어미의 잘못은 전혀 의식되지 않고 있는 데서 우리의 권위주의 요소가 나타나 있다. 새끼들의 잘못에는 어미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청개구리의 비극은 한국의 사회와 교육, 정부의 비극이기도 하다. 모든 잘못은 피교육자, 국민들, 젊은 세대에만 있고, 교육자, 정부, 기성세대의 책임은 의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메커니즘(mechanism)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너무나 근시안적이요 실리 위주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가져다주는 비극이다.
국민의 정서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임기응변의 정책을 쓰다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 정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이다.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기본 원칙과 일관성의 결여(缺如)로 말미암아 생기는 불신은 우리 가정, 직장,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에 이르기까지 더욱 악화된다.
불신은 인간관계의 암(癌)적 존재이다. 한번 생겨 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치유하기 어려워져 버린다.
지금 우리의 가정과 사회, 정부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성함보다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신뢰의 회복이다. 기본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서 미래를 예측(豫測)할 수 있는 확고한 표준이 설정되어 그 기본 질서와 표준이 철저히 존중되고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선진국의 대열(隊列)에 낄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에 이런 풍토를 심을 수 있는 존경받는 지식인과 정치인, 사업가, 학자들이 많이 필요할 때다.
요즘 농약 살포가 많아지고 도시화로 인한 전답이 줄어 들어 청개구리 소리를 자주 들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지금 우리는 때가 되면 계속 울부짖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새끼 청개구리의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