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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세상 읽기

책 읽기는 세상 읽기

by 운영자 2015.10.06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남자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의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

두보의 시 장자(莊子)의 천하편에 나오는 惠施多方其書五車(혜시다방기서오거)에서 유래한 말로 장자가 친구 혜시의 장서를 보고 박학다식한 혜시가 많은 책을 읽은 것에 기인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남자만이 벼슬을 하고 세상에 나아갈 수 있었으므로 이런 표현을 썼지만 요즘 이런 표현이 생겨났다면 ‘인간필독오거서’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남녀평등의 시대가 되었으니, ‘지식인임을 자처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가슴이 찔리는 사람들이 꽤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과연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는지 되돌아본다면 말이다.

놀랄만한 또 한 가지 사실은 수레라는 것이 지금으로 말하면 1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짐을 너끈히 실을 수 있는 달구지를 말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단언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20~30수레분의 책을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책의 형태를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간다.

책(冊)이라는 한자는 대나무를 조각내어 거기에 글을 쓴 뒤 그것을 묶었음을 보여주는 상형문자다. 책을 셀 때 ‘말다’라는 의미의 ‘권(卷)’은 그것을 운반하거나 보관할 때는 돌돌 말아야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 당시에는 동물의 털로 만든 붓을 필기구로 사용했다. 아마도 안부를 묻는 편지 한 통만 써서 말아 놓더라도, 그 분량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수레의 크기가 아무리 큰들 다섯 수레라고 해 봐야 현대의 대하소설 한 질도 안 될 것이다. 이제 조금 위안이 될까?

독서는 습관이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고 습관처럼 말하면서도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는다.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먹고 살만 해도 책을 안 읽는다.

돈을 많이 벌어도 더 벌어야 하기에 여유는커녕 점점 바빠지는 게 인생살이다.

먹고 사는 일에 붙들려 밥벌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질적으로 풍족해 육신에는 기름기가 흘러도 황폐해지는 마음이 문제다.

책 읽기는 세상 읽기요, 생각의 힘과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원천이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사람이 늙어도 계속 변화할 수 있는 힘은 독서에서 나온다. 독서를 많이 하게 되면 식견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식견이란 세상을 보고 사물을 이해하는 안목이다.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을 단순한 정보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안목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목적은 바로 이 안목을 세우기 위해서다. 독서를 통해 세상과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독서는 홀로 존재하는 힘을 길러 준다. 주역에 나오는 獨立不懼 遁世無悶(독립불구 둔세무민)이라는 말은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는 뜻이다. 세상과 떨어져 있어도 근심이 없는 힘은 독서에서 나온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내려면 책을 붙잡아야 한다. 독서도 습관이라는 말이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책은 인류발전의 지적도구

흔히 인류의 4대 발명으로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꼽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중 두 가지가 언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의 발달은 이성적 사고의 범위가 확장됨을 의미한다.

언어를 더욱 유려하고 폭넓게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논리적이고 풍부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보다 이성적인 인간이며, 문화적인 인간이기도 하다.

수 천 년 동안 인류는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금속활자를 거치면서, 기록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전파하면서 지식의 확대 재생산을 통하여 문명과 지성을 발전시켜왔다.

한마디로 책은 인류의 발전을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지적 도구이자 유산인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서도 그 효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책이 단순히 지식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를 대체할 수는 있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창의적이고 깊은 통찰력은 책을 읽을 때와 같은 완전히 몰입된 지적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웹에서 얻는 지식은 그 속성상 겉핥기식, 피상적, 산만한 지식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 속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깊게 침잠해보는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

등화가친의 계절을 맞아 곳곳에서 독서와 관련된 문화행사들이 줄을 잇고 전남교육청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급학교의 독서토론 수업이나 독서토론대회도 그 깊이와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계산적이고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는 이 같은 노력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밤이 길고 불 빛 밝은 청아한 이 가을에 책 한권 손안에 펼쳐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