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해 다짐은 ‘환경의 재구성’으로!
<칼럼> 새해 다짐은 ‘환경의 재구성’으로!
by 운영자 2016.01.06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삶을 위한 다짐을 위해 해돋이 장소로 아니면 가족과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또한 친지나 친구들에게 문자나 유선으로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덕담을 한다.
이는 어제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보려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지 않을까? 그것은 ‘Know-why’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일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정확하게 하는 능력을 알기 위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은 ‘왜 일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 ‘Know-why’ 능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인문학에 있다. 때문에 인문학의 열풍은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해답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는 것이고, 일반 대중들도 삶의 가치와 의미, 목적을 찾기 위해 ‘인문학 강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다짐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실천을 하게 만드는 변화는 생각으로 하는 다짐도 중요하지만 ‘환경’의 변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오늘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고 한다면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도록 주변 환경의 변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신의 주위 환경을 한 번 돌아보자.
우리나라 거실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TV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거실에 가면 우리나라 TV가 놓은 공간에 책장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지 않는 나라 중에 상당히 순위가 높은 것도 가정의 환경 배치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독서 토론 수업을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구성원 모두가 독서가 중요하다고 느끼고 생각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독서가 활성화가 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학년 초가 되면 새로운 교육계획을 수립하면서 생각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환경 구성이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혀 짧은 스승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바담 풍!”하면서 제자들에게 아무리 “바람 풍!” 하라고 요구해도 제자들은 “바담 풍!” 할 수 밖에 없다.
자녀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공자가 바른 정치를 묻는 노나라 계강자에게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 “지도자는 바람이고 백성은 풀이므로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이 백성들은 지도자가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라고 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럼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일까? 어른들이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교육받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인간은 ‘생각’하고 ‘대화’해야 행복한 존재인데, 생각하고 대화하는 공부는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할 줄을 모른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 탓을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이지성은 우리들은 “생각과 대화로 풀어야 할 삶의 문제를 TV, 게임, 술, 공허한 수다 등으로 푼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라는 근거 없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서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며, 놀랍게도 이 모든 게 당신이 받은 교육의 결과요.
따라서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교육받은 대로 살고 있다” 하는 일침이 폐부를 찌른다.
삶을 바꾼 만남을 대표하는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이야기를 보자.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그 사람의 일생을 바꾸고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한 만남은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는 것이다.
황상은 스승 정약용을 만남으로써 삶이 송두리째 바뀐, 만남을 맛남으로 바꾼 환경의 재구성인 것이다.
나를 바꾸려면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만남과 환경을 재배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는 날마다 삶을 반복한다.
그 반복하는 삶 속에서 나를 바꾸려면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실천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머리는 앞을 보고, 페달을 앞으로 돌리고 힘차게 돌려라.”라고 만약 어른이 자전거 타기를 말로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단순히 머릿속에 쌓아가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습(習)이 있어야 하고, 그 習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환경의 재구성(再構成)’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어제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보려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지 않을까? 그것은 ‘Know-why’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일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정확하게 하는 능력을 알기 위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은 ‘왜 일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 ‘Know-why’ 능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인문학에 있다. 때문에 인문학의 열풍은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해답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는 것이고, 일반 대중들도 삶의 가치와 의미, 목적을 찾기 위해 ‘인문학 강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다짐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실천을 하게 만드는 변화는 생각으로 하는 다짐도 중요하지만 ‘환경’의 변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오늘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고 한다면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도록 주변 환경의 변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신의 주위 환경을 한 번 돌아보자.
우리나라 거실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TV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거실에 가면 우리나라 TV가 놓은 공간에 책장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지 않는 나라 중에 상당히 순위가 높은 것도 가정의 환경 배치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독서 토론 수업을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구성원 모두가 독서가 중요하다고 느끼고 생각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독서가 활성화가 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학년 초가 되면 새로운 교육계획을 수립하면서 생각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환경 구성이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혀 짧은 스승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바담 풍!”하면서 제자들에게 아무리 “바람 풍!” 하라고 요구해도 제자들은 “바담 풍!” 할 수 밖에 없다.
자녀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공자가 바른 정치를 묻는 노나라 계강자에게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 “지도자는 바람이고 백성은 풀이므로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이 백성들은 지도자가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라고 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럼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일까? 어른들이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교육받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인간은 ‘생각’하고 ‘대화’해야 행복한 존재인데, 생각하고 대화하는 공부는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할 줄을 모른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 탓을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이지성은 우리들은 “생각과 대화로 풀어야 할 삶의 문제를 TV, 게임, 술, 공허한 수다 등으로 푼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라는 근거 없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서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며, 놀랍게도 이 모든 게 당신이 받은 교육의 결과요.
따라서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교육받은 대로 살고 있다” 하는 일침이 폐부를 찌른다.
삶을 바꾼 만남을 대표하는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이야기를 보자.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그 사람의 일생을 바꾸고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한 만남은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는 것이다.
황상은 스승 정약용을 만남으로써 삶이 송두리째 바뀐, 만남을 맛남으로 바꾼 환경의 재구성인 것이다.
나를 바꾸려면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만남과 환경을 재배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는 날마다 삶을 반복한다.
그 반복하는 삶 속에서 나를 바꾸려면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실천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머리는 앞을 보고, 페달을 앞으로 돌리고 힘차게 돌려라.”라고 만약 어른이 자전거 타기를 말로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단순히 머릿속에 쌓아가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습(習)이 있어야 하고, 그 習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환경의 재구성(再構成)’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