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代의 正名? ‘아름다운 관계 형성’입니다!
時代의 正名? ‘아름다운 관계 형성’입니다!
by 운영자 2016.01.26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길이 허물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 보통 두 가지의 생각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하나는 이 길을 누가 다닐는지 모르는 경우와 아는 사람이 다니는 길인 경우로 말입니다.
아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길을 지나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든가 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경우는 천양지차의 생각과 행동을 가져오게 됩니다. 길을 가다가도 아는 사람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시선, 표정, 사용하는 어휘, 마음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에도 모르는 사람이 타 있을 경우에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 즉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은 사회의 자식이며, 사회공동체의 형성자로서 포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의 어버이이기도 하며, 사회적인 것임과 동시에 또한 사회의 형성자(形成者)로서 참가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어디까지나 개인을 기초로 성립되는 동시에 개인은 사회를 짊어지고 발달시켜 간다는 생각입니다. 성공에 필요한 요인으로 옛날에는 지능지수를 따졌지만 이제는 감성지수 내지 사회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기인한 것입니다.
사회에 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이 강조되는 것도 지속성의 중요성을 나타낸 것이지요.
이러한 경향이 학생들의 취학 경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학창 시절에 배웠지만 막연했었지요. 그런데 사회는 인간관계를 뜻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네요.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저 사람과 혹은 저 사물과 관계를 오래 지속할 것이냐 아니냐의 관점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지지요. 성공도 행복도 인간관계의 산물이 아닐까요?
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본질’ ‘인간 관계’ ‘ 사물 관계’ 등에 관한 공부도 강조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집단 지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이 제공돼야 합니다.
그럼 관계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먼저 ‘안다’는 것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우리가 ‘너 누구 아니?’하고 물으면 안다고 의심 없이, 별 생각 없이 말을 합니다. 그럼 ‘안다’는 것을 말로 혹은 문자로 써보라고 하면 몇 줄 쓰다가 멈춥니다.
이 때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을 기억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눈, 코 등이 어떻게 생겼다는 등의 ‘앎’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모르면 그게 사람인가?’라는 말을 잘들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안다’는 것은 영어로 ‘I know you’이고, 정말로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당신을 이해한다는 뜻의‘I understand you’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의 장점, 고민, 비전을 ‘아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또한 당신의 고뇌와 상처를 알아서 네가 안고 있는 모든 것을 ‘안는다’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 아픔과 슬픔, 어려움을 안아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안다는 것은 지식을 많이 배워서 차곡차곡 쌓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내 몸으로 상대방을 많이 안아주는 것입니다. 즉 그 고통과 상처를 ‘안아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학생 생활지도의 의미와 방법, 더 나아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아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안으려고 하면 법적 소송이 뒤따르고, 이제까지 쌓아왔던 명예와 명성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뜻이라는 것이겠지요? 또 차례와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대의 과거가 궁금하거든 현재의 처지를 잘 살펴보아라. 그대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라”는 달라이 라마의 금언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앞으로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지침이 아닐까요? 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아는 길을 가면 두렵지 않으며, 아는 수업은 즐겁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배울 것, 볼 것, 평안함을 제공할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입니다!
아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길을 지나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든가 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경우는 천양지차의 생각과 행동을 가져오게 됩니다. 길을 가다가도 아는 사람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시선, 표정, 사용하는 어휘, 마음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에도 모르는 사람이 타 있을 경우에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 즉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은 사회의 자식이며, 사회공동체의 형성자로서 포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의 어버이이기도 하며, 사회적인 것임과 동시에 또한 사회의 형성자(形成者)로서 참가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어디까지나 개인을 기초로 성립되는 동시에 개인은 사회를 짊어지고 발달시켜 간다는 생각입니다. 성공에 필요한 요인으로 옛날에는 지능지수를 따졌지만 이제는 감성지수 내지 사회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기인한 것입니다.
사회에 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이 강조되는 것도 지속성의 중요성을 나타낸 것이지요.
이러한 경향이 학생들의 취학 경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학창 시절에 배웠지만 막연했었지요. 그런데 사회는 인간관계를 뜻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네요.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저 사람과 혹은 저 사물과 관계를 오래 지속할 것이냐 아니냐의 관점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지지요. 성공도 행복도 인간관계의 산물이 아닐까요?
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본질’ ‘인간 관계’ ‘ 사물 관계’ 등에 관한 공부도 강조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집단 지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이 제공돼야 합니다.
그럼 관계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먼저 ‘안다’는 것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우리가 ‘너 누구 아니?’하고 물으면 안다고 의심 없이, 별 생각 없이 말을 합니다. 그럼 ‘안다’는 것을 말로 혹은 문자로 써보라고 하면 몇 줄 쓰다가 멈춥니다.
이 때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을 기억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눈, 코 등이 어떻게 생겼다는 등의 ‘앎’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모르면 그게 사람인가?’라는 말을 잘들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안다’는 것은 영어로 ‘I know you’이고, 정말로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당신을 이해한다는 뜻의‘I understand you’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의 장점, 고민, 비전을 ‘아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또한 당신의 고뇌와 상처를 알아서 네가 안고 있는 모든 것을 ‘안는다’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 아픔과 슬픔, 어려움을 안아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안다는 것은 지식을 많이 배워서 차곡차곡 쌓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내 몸으로 상대방을 많이 안아주는 것입니다. 즉 그 고통과 상처를 ‘안아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학생 생활지도의 의미와 방법, 더 나아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아주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안으려고 하면 법적 소송이 뒤따르고, 이제까지 쌓아왔던 명예와 명성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뜻이라는 것이겠지요? 또 차례와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대의 과거가 궁금하거든 현재의 처지를 잘 살펴보아라. 그대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라”는 달라이 라마의 금언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앞으로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지침이 아닐까요? 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아는 길을 가면 두렵지 않으며, 아는 수업은 즐겁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배울 것, 볼 것, 평안함을 제공할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