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읽기
장인우의 고전읽기
by 운영자 2016.03.25
나는 노산군이오 (2)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개벽19호, 1922.1) 내 열세 살 되던 해, 10월 10일, 그날, 그 날은 내게 참으로 기막힌, 기막힌 날이었소.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소. 열둘, 열셋. 그대들은 그 나이에 무엇을 하며 살았소? 그대들은 그 나이 때 하루를 무얼 하며 보냈소?
나는 참으로 답답하고 따분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었소. 할바마마이신 세종대왕의 성덕으로 은혜로운 나라를 이어갈 원손으로 태어나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살 운명으로 태어났소만, 아바마마이신 문종대왕께옵서 내 나이 열둘이 되던 해 5월에 승하하시면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왕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소.
내 곁에는 고명대신인 황보인을 비롯해 백두산 호랑이라 일컫는 만고의 충신인 김종서 대감이 있었고, 선왕들께서 평생의 정성을 다해 기른 성삼문, 신숙주 같은 집현전 학사들이 있었고, 정인지, 최항과 같은 믿음직한 대신들도 있었소.
거기에 수양 숙부나 안평 숙부와 금성 숙부까지 왕실의 여러 종친들이 있었소. 하지만 춘하추동 기후가 변하고 세상 만물들이 제각기 빛을 발하며 교태며 아양을 부리며 흘러가도 언제든 따사롭게 손잡아 주고 위로해 줄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니 계셨소.
다만 혈육의 정을 나눌 만한 이로 나의 누님이신 경혜 공주가 계셨고, 수측 양 씨에게서 난 경숙 옹주만이 있었을 뿐이오. 그러나 그 동기들도 영양위 정종과 반성위 강자순에게 시집을 가 살았으니, 나는 혈혈단신으로 고적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았소.
정사를 돌보아야 하는 순간들에도 열두세 살 소년은 밖이 그리웠소. 새들의 지저귐이나 형형색색의 꽃들이 손짓해 부르는 것 같고, 때론 하늘 구름을 따라 숨었다 나왔다 숨바꼭질을 하는 둥그런 해를 따라가 보고 싶고, 냇물 흐르는 곳에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며 늦은 오후 햇살의 이지러짐도 숨 쉬어보고 싶었소.
자연은 사시사철 사람들 속에 숨어서, 사람들 옷깃 사이를 넘나들면서, 사람들 닫은 방문 창살 사이까지라도 따라다니며 재잘대는데, 나는 매일 백발이 성성한 늙은 대신들과 작은 끈 하나라도 단단히 부여잡고 오르려 애쓰는 ‘꾼’ 같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궁궐 안에서 맥없이 시든 배춧잎 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소. 그래도 나는 왕이었소.
그 날은 나의 하나뿐인 혈육, 경혜 공주의 열여덟 번째 생일날이었소. 미행 한 번도 표 나게 할 수 없는 처지에 영양위 궁에서 만난 공주와 옹주는 형언할 수 없는 동기간의 눈길로 나를 맞았소.
나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가진 어머니 같은 공주도 군신의 예가 있어 대함에 넘침을 삼갔지만 영양위 궁의 안방에는 기쁨과 정다움과 웃음이 넘쳐났소.
피차에 입은 상복을 바라보며 승하하신 부왕 생각에 눈물이 괴는 때도 있었지만 은촛대 휘황하게 밝은 촛불 빛에는 눈물도 한숨도 아름답고, 정다웠소.
그런데, 그런데 말이오, 어린 궁녀들과 손을 맞잡고 ‘달아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노래를 부르던 때에 갑자기 밖에서 300여 군사들의 야단스러운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소. 수양 숙부가 그 밤에 긴급한 일이 있어 군사를 몰고 왔다 하였소.
엉겁결에 의관을 정제하고무서운 숙부를 맞으려는데, 숙부는 살기 어린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고는 “황보인과 김종서 놈들이 모반을 꾸미기에 미처 여쭙지 못하고 적과 종서를 베고 그 연유를 상감께 아뢰오”하였소. 인과 종서가 겉으로는 충성이 있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안평대군 용과 왕래하고, 널리 친당을 심어 웅거하며, 오늘 10월10일 영양위 궁을 엄습하려는 꾀를 세웠다 했소.
기막힌 밤이었소. 수양 숙부와 정인지, 신숙주, 최항 같은 이들이 왕을 지키고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역모자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아뢴다는 그 말, 참으로 충성스런 말이건만, 그 밤에 도륙을 당한 자들 모두 부왕의 고명을 받은 대신들이었소.
그 밤, 어린 소년, 왕은 물이든 흙이든 꿇어 엎드려 어린 왕을 바른 길로 가라며 일깨우던 충성스런 신하, 내시 김연과 한숭은 이 모든 것이 수양대군의 야욕이 빚은 참화라는 말을 눈물로 아뢰고는 수양 숙부의 칼에 맞아 내 곁을 떠났소. 그 피가 내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 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 사랑하던 사람이여! / 사랑하던 사람이여! /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후략)>
나는 참으로 답답하고 따분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었소. 할바마마이신 세종대왕의 성덕으로 은혜로운 나라를 이어갈 원손으로 태어나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살 운명으로 태어났소만, 아바마마이신 문종대왕께옵서 내 나이 열둘이 되던 해 5월에 승하하시면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왕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소.
내 곁에는 고명대신인 황보인을 비롯해 백두산 호랑이라 일컫는 만고의 충신인 김종서 대감이 있었고, 선왕들께서 평생의 정성을 다해 기른 성삼문, 신숙주 같은 집현전 학사들이 있었고, 정인지, 최항과 같은 믿음직한 대신들도 있었소.
거기에 수양 숙부나 안평 숙부와 금성 숙부까지 왕실의 여러 종친들이 있었소. 하지만 춘하추동 기후가 변하고 세상 만물들이 제각기 빛을 발하며 교태며 아양을 부리며 흘러가도 언제든 따사롭게 손잡아 주고 위로해 줄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니 계셨소.
다만 혈육의 정을 나눌 만한 이로 나의 누님이신 경혜 공주가 계셨고, 수측 양 씨에게서 난 경숙 옹주만이 있었을 뿐이오. 그러나 그 동기들도 영양위 정종과 반성위 강자순에게 시집을 가 살았으니, 나는 혈혈단신으로 고적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았소.
정사를 돌보아야 하는 순간들에도 열두세 살 소년은 밖이 그리웠소. 새들의 지저귐이나 형형색색의 꽃들이 손짓해 부르는 것 같고, 때론 하늘 구름을 따라 숨었다 나왔다 숨바꼭질을 하는 둥그런 해를 따라가 보고 싶고, 냇물 흐르는 곳에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며 늦은 오후 햇살의 이지러짐도 숨 쉬어보고 싶었소.
자연은 사시사철 사람들 속에 숨어서, 사람들 옷깃 사이를 넘나들면서, 사람들 닫은 방문 창살 사이까지라도 따라다니며 재잘대는데, 나는 매일 백발이 성성한 늙은 대신들과 작은 끈 하나라도 단단히 부여잡고 오르려 애쓰는 ‘꾼’ 같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궁궐 안에서 맥없이 시든 배춧잎 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소. 그래도 나는 왕이었소.
그 날은 나의 하나뿐인 혈육, 경혜 공주의 열여덟 번째 생일날이었소. 미행 한 번도 표 나게 할 수 없는 처지에 영양위 궁에서 만난 공주와 옹주는 형언할 수 없는 동기간의 눈길로 나를 맞았소.
나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가진 어머니 같은 공주도 군신의 예가 있어 대함에 넘침을 삼갔지만 영양위 궁의 안방에는 기쁨과 정다움과 웃음이 넘쳐났소.
피차에 입은 상복을 바라보며 승하하신 부왕 생각에 눈물이 괴는 때도 있었지만 은촛대 휘황하게 밝은 촛불 빛에는 눈물도 한숨도 아름답고, 정다웠소.
그런데, 그런데 말이오, 어린 궁녀들과 손을 맞잡고 ‘달아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노래를 부르던 때에 갑자기 밖에서 300여 군사들의 야단스러운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소. 수양 숙부가 그 밤에 긴급한 일이 있어 군사를 몰고 왔다 하였소.
엉겁결에 의관을 정제하고무서운 숙부를 맞으려는데, 숙부는 살기 어린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고는 “황보인과 김종서 놈들이 모반을 꾸미기에 미처 여쭙지 못하고 적과 종서를 베고 그 연유를 상감께 아뢰오”하였소. 인과 종서가 겉으로는 충성이 있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안평대군 용과 왕래하고, 널리 친당을 심어 웅거하며, 오늘 10월10일 영양위 궁을 엄습하려는 꾀를 세웠다 했소.
기막힌 밤이었소. 수양 숙부와 정인지, 신숙주, 최항 같은 이들이 왕을 지키고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역모자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아뢴다는 그 말, 참으로 충성스런 말이건만, 그 밤에 도륙을 당한 자들 모두 부왕의 고명을 받은 대신들이었소.
그 밤, 어린 소년, 왕은 물이든 흙이든 꿇어 엎드려 어린 왕을 바른 길로 가라며 일깨우던 충성스런 신하, 내시 김연과 한숭은 이 모든 것이 수양대군의 야욕이 빚은 참화라는 말을 눈물로 아뢰고는 수양 숙부의 칼에 맞아 내 곁을 떠났소. 그 피가 내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소.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 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 사랑하던 사람이여! / 사랑하던 사람이여! /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