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 읽기> 블루 로망 꽃은 비가 되어 내리고 (2)
<장인우의 고전 읽기> 블루 로망 꽃은 비가 되어 내리고 (2)
by 운영자 2016.06.03
- 여인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나는 어쩌면 ‘잃는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았지만 ‘잃는다는 것’, ‘잃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고, 당연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얻지 못한 것,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고, 그것이 집착으로 굳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었다.
조선에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 ‘한’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나의 욕망이 낳은 아픔인 것인지도 모른다. 친정 집안이 기울어 가고 아버님과 오라버니들을 차례로 잃고 자식을 잃었던 것은 지금도 고통스러운 아픔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차라리 행복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이다.
윤심덕이라는 여인은 김우진이라는 사내를 사랑했다. 그 사내는 1897년 목포 갑부이면서 개화사상가이자 목포 개항 당시 무안 감리를 지낸 김성규의 장남으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를 다니며 연극을 한 연극쟁이라 했다.
그 사내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인데다, 후미코라는 일본 여인을 열렬하게 사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사내였지만 사랑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운명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바람 같은 것이기에….
심덕은 영후(홍난파)가 작곡한 「애수」라는 노래를 들으며 아무도 모르게 울던 그 사내를 사랑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선율이 천천히 반복해서 이어지는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를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듣는 사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면서 홀로 울고 있는 사내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말았다. 하지만 심덕의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가 돌아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까지 혼자만의 사랑을 했다. 다른 여인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내의 두툼한 입술을 떠올리고, 우울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떠올리고, 보고 싶어 하고 애달파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결국 스스로 보내주어야만 하는 아픔이 되고 만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들의 기억이 있는 한, 추억이 있는 한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집착’, 그래 ‘집착’일 뿐이다.
심덕과 우진은 하나가 되었다. 언제나 두툼하고 고집스럽게 보이는 우진의 입술이, 노래를 부를 때면 성스러운 공명을 터뜨려 내보내는 아름다운 악기 같은 심덕의 입술을 소유했다. 심덕은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남자의 숨결, 아픔보다는 놀라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을 소유했다.
그리고 진보적 사상을 가진 그들은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을 소유한 채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쳐 사랑했지만, 결국 소유했던 사랑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 줄 수밖에 없을 때 찾아드는 공허함, 빈자리에서 밀려드는 차가운 고독, 길들여도 길들여지지 않는 미련,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해 내는 순간의 조각들…. 심덕은 몰랐다. 미처 몰랐다. 내가 잃는다는 것,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심덕도 미처 알지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사유하려 했다. 어린 시절 의붓오빠들로부터 당했던 성추행과 폭력으로 인해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없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1941년 주머니에 돌을 잔뜩 집어넣고 템즈강에 투신자살했다.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였던 버지니아 울프는 래너드 울프가 청혼했을 때, 부부생활을 하지 않을 것과 작가의 길을 가려는 자신을 위해 공무원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을 요구하였다.
래너드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성적 욕망을 버리고, 사회적 지위도 내려놓고 반려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들의 사랑은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동지적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조선에 태어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김성립이 아니어도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로부터 갇힌 채였다면 나는 역시 불행했을 것이다. 사랑은 마주보기인 것이다.
눈빛을 마주보고 웃음지어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자신의 눈물 흐르는 소리는 들키지 않으려 숨죽일 때 피어나는 것이 ‘사랑꽃’인 것이다.
나는 어쩌면 ‘잃는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았지만 ‘잃는다는 것’, ‘잃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고, 당연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얻지 못한 것,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고, 그것이 집착으로 굳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했었다.
조선에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 ‘한’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나의 욕망이 낳은 아픔인 것인지도 모른다. 친정 집안이 기울어 가고 아버님과 오라버니들을 차례로 잃고 자식을 잃었던 것은 지금도 고통스러운 아픔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차라리 행복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이다.
윤심덕이라는 여인은 김우진이라는 사내를 사랑했다. 그 사내는 1897년 목포 갑부이면서 개화사상가이자 목포 개항 당시 무안 감리를 지낸 김성규의 장남으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를 다니며 연극을 한 연극쟁이라 했다.
그 사내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인데다, 후미코라는 일본 여인을 열렬하게 사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사내였지만 사랑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운명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바람 같은 것이기에….
심덕은 영후(홍난파)가 작곡한 「애수」라는 노래를 들으며 아무도 모르게 울던 그 사내를 사랑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선율이 천천히 반복해서 이어지는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를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듣는 사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면서 홀로 울고 있는 사내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말았다. 하지만 심덕의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가 돌아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까지 혼자만의 사랑을 했다. 다른 여인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내의 두툼한 입술을 떠올리고, 우울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떠올리고, 보고 싶어 하고 애달파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결국 스스로 보내주어야만 하는 아픔이 되고 만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들의 기억이 있는 한, 추억이 있는 한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집착’, 그래 ‘집착’일 뿐이다.
심덕과 우진은 하나가 되었다. 언제나 두툼하고 고집스럽게 보이는 우진의 입술이, 노래를 부를 때면 성스러운 공명을 터뜨려 내보내는 아름다운 악기 같은 심덕의 입술을 소유했다. 심덕은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남자의 숨결, 아픔보다는 놀라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을 소유했다.
그리고 진보적 사상을 가진 그들은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을 소유한 채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쳐 사랑했지만, 결국 소유했던 사랑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 줄 수밖에 없을 때 찾아드는 공허함, 빈자리에서 밀려드는 차가운 고독, 길들여도 길들여지지 않는 미련,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해 내는 순간의 조각들…. 심덕은 몰랐다. 미처 몰랐다. 내가 잃는다는 것,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심덕도 미처 알지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사유하려 했다. 어린 시절 의붓오빠들로부터 당했던 성추행과 폭력으로 인해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없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1941년 주머니에 돌을 잔뜩 집어넣고 템즈강에 투신자살했다. 20세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였던 버지니아 울프는 래너드 울프가 청혼했을 때, 부부생활을 하지 않을 것과 작가의 길을 가려는 자신을 위해 공무원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을 요구하였다.
래너드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성적 욕망을 버리고, 사회적 지위도 내려놓고 반려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들의 사랑은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동지적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조선에 태어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김성립이 아니어도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로부터 갇힌 채였다면 나는 역시 불행했을 것이다. 사랑은 마주보기인 것이다.
눈빛을 마주보고 웃음지어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자신의 눈물 흐르는 소리는 들키지 않으려 숨죽일 때 피어나는 것이 ‘사랑꽃’인 것이다.